“파키스탄은 2002년부터 알 카에다의 안전한 피난처가 돼 왔다. 나는 당신 정부에 알 카에다 지도부의 소재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말과 진짜로 체포할 의지는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국무장관 취임 이후 처음으로 파키스탄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29일 직설화법을 구사하면서 파키스탄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분쟁지역인 펀자브 주 라호르를 방문해 현지 언론인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다. 28일 사흘간의 방문 일정을 시작한 클린턴 장관은 이날 격앙된 목소리로 파키스탄 정부를 비난한 뒤 “여러분이 선택할 문제지만 파키스탄 영토가 줄어들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라고 믿는다”고 어린아이를 훈계하듯 말했다.
미국 지도부는 파키스탄 정부나 군부가 알 카에다 소탕에 미온적이며 심지어 정보기관은 그들과 내통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양국관계를 의식해 파키스탄 정부를 직접 비난한 미국 고위 관료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클린턴 장관의 이번 발언은 그런 금기를 깼을 뿐 아니라 몇 달 전만 해도 공개적으로 파키스탄 지도부를 치켜세웠던 것을 감안하면 180도 달라진 태도다.
이에 대해 대다수 외신은 파키스탄 현실에 대한 분노가 이례적인 강경 발언의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클린턴 장관이 9·11테러 당시 뉴욕 주 상원의원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알 카에다에 대한 증오심이 남다르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클린턴 장관이 만난 파키스탄 인사들은 알 카에다 소탕을 말하기보다는 미국에 대한 불신과 불만만을 쏟아내기 일쑤였다. 29일 라호르국립대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클린턴 장관은 “미국이 왜 파키스탄 독재정권을 지원했나” “우리가 미국을 믿어도 되나” 등 신랄한 질문공세에 시달렸다. 30일에는 반미 정서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미군의 무인기 공격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면전에서 들어야 했다. 저명한 파키스탄 여성 앵커들과의 생방송 TV 인터뷰 도중 한 방청객은 “미군의 무인기 공격은 재판 없는 사형 집행이나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방청객은 “이 전쟁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라 당신의 전쟁이다. 당신은 하나의 9·11을 경험했지만 파키스탄 국민은 매일 9·11을 겪고 있다”고 주장해 클린턴 장관을 곤혹스럽게 했다.
클린턴 장관의 발언에 파키스탄 정부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파키스탄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에 “함께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양국의 동맹관계를 저해할 수 있는 매우 잘못된 충고였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AP통신은 현지 방송이 클린턴 장관의 발언 장면을 반복 방영하면서 가뜩이나 미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현지 여론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클린턴 장관은 30일 ABC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직설화법을 구사한 이유에 대해 “신뢰는 쌍방향이어야 하는데 (양국 간에는) 신뢰가 부족하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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