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땅 아프간에도 서민들에게 위안주는 점쟁이 ‘팔벤’이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31일 03시 00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있는 한 이슬람교 사원 옆 골목에 조그만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수십 년의 전쟁과 테러, 빈곤 속에 가슴 졸이는 아프간 서민들이 잠시 위로를 얻는 이곳은 점집 골목이다. 중앙아시아 전문 인터넷매체 유라시아넷이 28일 아프간의 점집을 소개했다.

경력 15년의 팔벤(fallben·아프간 말로 점쟁이) 사이드 레자 씨는 점술 도구로 빨간색 아라비아숫자로 된 표 뭉치를 쓴다. 각각의 표를 이용해 손님의 희망에 맞는 코란의 장(章·separah)과 절(節·ayat)을 찾는다. 배가 아파 찾아온 손님에게 레자 씨는 위의 방식으로 찾은 코란의 한 구절을 펜으로 종이에 썼다. 잉크는 녹색이다. 가족에 관한 것은 빨간색, 부(富)는 검은색, 교육은 파란색 잉크를 쓴다. 구절을 쓴 종이를 물에 적시고 그 물을 손님이 마시게 한다. 적신 종이는 손님의 집 벽 틈에 잘 넣어두라고 했다.

치료사, 예언자이자 대필(代筆)가이기도 한 팔벤의 역사는 대략 1400년으로 대부분 가업으로 잇고 있다.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며 신성 모독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다가 2001년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면서 복권됐다.

팔벤은 대개 이슬람교도지만 카르테 파완 마을의 노란도르셍 씨는 시크교도다. “손님이 찾아오면 (시크교도인) ‘나를 믿느냐’고 묻고는 그렇다고 하면 점을 쳐 주죠.” 노란도르셍 씨는 코란 대신 인도 펀자브 지역 말로 된 구절을 써주며 베개 속에 넣고 자라고 처방한다. 그러나 그는 “솔직히 나도 내 능력을 믿지 않아요. 이슬람교도나 믿지요.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팔벤은 거리에서 나무로 짠 상자를 놓고 점을 친다. 손님은 주로 노처녀 딸을 둔 어머니, 고부 갈등을 겪는 며느리, 아이를 못 낳는 새댁 등 여성이 많다. 복채는 정해져 있지 않다. 거리에서 주사위 점을 치는 사예드 라바니 씨는 “손님이 돈이 없으면 받지 않는다. 다만 부자 손님은 1달러를 주기도 하고 점이 맞으면 더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슬람교 지도층에게 팔벤은 여전히 ‘반(反)이슬람’ 골칫덩어리다. 지난해에는 한 이슬람 성지 옆에서 팔벤 10여 명이 쫓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을 찾는 서민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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