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 대응 모범생 EU도 돈 앞에선…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4일 03시 00분


개도국 지원금-CO2 감축량
각국 이해따라 다른 목소리
“미국이 앞장서라” 압박도

조제 마누엘 두랑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지난주 EU 정상회의 논의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애를 태워야 했다. 핵심 의제 중 하나였던 기후변화 대응안을 놓고 27개 회원국 간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3일부터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EU 정상회의에 빈손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 다음 달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를 앞두고 뭔가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지만 회의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의 선구자를 자처해온 EU의 야심 찬 계획이 흔들리고 있다. 겉으로는 “우리가 가장 많은 성과를 냈다”고 큰소리치지만 내부적으로는 파열음이 끊이지 않는다. ‘2020(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 20% 감축)’ 정책 등을 쏟아내며 이 분야의 주도권을 노려온 EU로서는 자존심이 구겨지는 상황이다.

○ “믿었던 유럽, 너마저…”

이번 EU 정상회의에서 회원국 정상들은 개발도상국들이 이산화탄소(CO₂) 감축 목표량을 충족시키도록 하기 위해 2020년까지 1000억 유로를 투자해야 한다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회원국이 얼마만큼 액수를 부담할 것인지는 정하지 못했다. 폴란드와 헝가리를 중심으로 한 9개 중·동유럽 국가들은 “선진 서유럽에 비해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다”며 반발했다. 서비스업보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이들 국가는 EU가 내놓은 CO₂ 감축 목표량에도 난색을 표시해 왔다.

EU에서 경제규모가 가장 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도 지원금 부담이 불만스럽기는 마찬가지. 특히 독일에서는 미국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가 기후변화 정책을 따라오지 않을 경우 유럽만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뉴욕타임스가 3일 전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는 CO₂ 배출량이 많은 국가 수입품에 탄소세를 부과하자고 했지만 이는 영국과 스웨덴 등이 “또 다른 무역장벽”이라며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자 EU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논의할 실무그룹을 구성하기로 했다.

○ “미국이 오바마 효과 보여라”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나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다. 2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시작된 유엔 기후변화회의에서 180개국 참석자들은 “미국이 CO₂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개도국 지원에 앞장서라”고 압박했다. 코니 헤데고르 덴마크 환경 및 에너지장관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12월 10일) 노벨 평화상을 받으러 가면서 같은 시기(7∼18일)에 열리는 기후변화회의에 대표단을 빈손으로 보낸다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미 의회에 제출된 ‘캡 앤드 트레이드(cap and trade·탄소 총량 제한 및 배출권 거래)’ 법안이 코펜하겐 회의 이전에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미 대통령이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에 직접 참석해 과감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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