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古代사원서 싹튼 외교 보복전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7일 03시 00분


입구 봉쇄 당한 캄보디아, 태국 前총리 탁신을 고문 영입
양국 대사 소환 등 감정싸움 치열… 태국, 국경 봉쇄 경고

캄보디아와 태국의 국경지대에 있는 고대 힌두사원 프레아 비히어. 이 사원은 본래 캄보디아의 영토이지만 높이 500m의 깎아지른
절벽(앞쪽)에 있기 때문에 태국 영토를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어 양국 간에 오랜 영유권 분쟁 대상이었다. 사진 출처 헬리콥터스캄보디아
캄보디아와 태국의 국경지대에 있는 고대 힌두사원 프레아 비히어. 이 사원은 본래 캄보디아의 영토이지만 높이 500m의 깎아지른 절벽(앞쪽)에 있기 때문에 태국 영토를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어 양국 간에 오랜 영유권 분쟁 대상이었다. 사진 출처 헬리콥터스캄보디아
국경지대의 고대 힌두사원의 영유권을 놓고 싸우던 캄보디아와 태국의 갈등이 전면적인 외교전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캄보디아가 부정부패 혐의로 해외도피 중인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를 훈 센 총리의 경제고문으로 임명하자 양국은 대사를 소환하고 국경 봉쇄를 경고하는 등 감정싸움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캄보디아 총리가 태국의 전 총리를 무리하게 경제고문으로 기용한 이면에는 태국이 고대 힌두사원에 병력을 배치한 데 대한 보복의 성격이 있다는 게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외교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다.

○ 양국 대사 소환…국경 봉쇄 경고

캄보디아 정부는 훈 센 총리의 요청에 따라 지난달 27일 노로돔 시하모니 캄보디아 국왕이 탁신 전 총리를 경제고문으로 임명했다고 4일 밝혔다. 탁신 전 총리는 작년 8월 태국 대법원의 부패공판에 참여하지 않고 해외로 도피했으며 이후 대법원은 탁신 전 총리에게 징역 2년형을 선고한 상태다.

이에 대해 아피싯 웨차치와 태국 총리는 “캄보디아가 탁신을 총리 경제고문으로 임명한 것은 태국 사법체제에 개입하는 것이고 태국 국민의 정서를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태국 정부는 다음 날인 5일 프놈펜에 주재하는 자국 대사와 공관원을 모두 철수시키고 앞으로 캄보디아와의 모든 국경 검문소를 봉쇄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 양국이 2001년 태국 만(灣)의 2만6000km²에 이르는 해역에서 유전과 가스전을 공동 개발키로 한 양해각서(MOU)를 비롯해 양국의 모든 외교협정을 폐기하겠다고 압력을 가했다.

캄보디아도 주태국 대사에게 본국으로 귀국하라고 훈령을 내리며 맞대응했다. 또 탁신 전 총리에게 적용된 부패 혐의들이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며 만약 태국 측이 탁신 전 총리에 대해 본국 송환을 요청하더라도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갈등의 불씨는 국경지대 사원

양국 간의 갈등은 접경지대에 있는 고대왕조 힌두사원인 ‘프레아 비히어’의 영유권 분쟁과 맥이 닿아 있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앙코르 왕조시대인 9∼11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원은 지리적으로 캄보디아의 영토이지만, 캄보디아 쪽은 깎아지른 절벽이어서 관광객이 이 사원에 들어가려면 태국 땅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한 세기 전부터 영유권 싸움이 계속됐다. 수면 아래 있던 분쟁이 폭발하게 된 것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정부가 이 사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부터다. 당시 태국 정부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지지했다.

태국 국민들은 “정부가 영유권을 팔아먹었다”며 반발했다. 태국 피플파워당 연립정부가 캄보디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지지한 배경에는 탁신 전 총리가 연루돼 있다는 소문도 퍼졌다. 탁신이 캄보디아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구상하는데 이를 위해 프레아 비히어를 양보했다는 설이다. 여론에 밀린 태국 정부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철회를 요청하는 한편 1500명의 군대를 배치해 사원입구를 봉쇄했다. 올해 4월에는 캄보디아군과의 무력충돌까지 벌어져 적어도 2명이 사망했다.

화가 난 훈 센 총리는 지난달 말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탁신 전 총리가 희망한다면 은신처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이번에 탁신을 경제고문으로 임명해 태국 측의 강한 반발을 불렀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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