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을 앞둔 아랍계 미국 군의관이 5일(현지 시간) 미국 내 최대 기지인 텍사스 주 포트후드 미군기지에서 동료들에게 총기를 난사해 13명이 숨지고 30명이 다쳤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미군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라고 전했다.
○ 정신과 군의관이 총기난사
미군 당국은 범인이 기지 병원 정신과 군의관인 니달 말리크 하산 육군 소령(39)이라고 밝혔다. 하산 소령은 이날 오후 1시 30분경 반자동소총과 자동소총 1정씩을 들고 해외 파병을 앞둔 군인들이 신체검사를 받던 행정사무소로 들어가 총기를 난사했다. 하산 소령은 총을 쏘기 전 “알라후 아크바르”(아랍어로 ‘신은 위대하다’는 뜻)라고 외쳤다고 포트후드 사령관인 로버트 콘 중장이 이날 NBC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CNN은 “군용이 아닌 민간용 총기를 사용한 점으로 볼 때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라고 전했다.
출동한 군의 사격으로 총알 4발을 맞은 하산 소령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며 현재 안정을 되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6일 미 연방수사국(FBI)은 하산 소령의 자택을 수색했다. 군 당국은 당초 다른 군인 3명도 용의자로 지목해 체포했으나 별다른 혐의점이 없어 곧 석방했다.
○ ‘파병 불안감’ vs ‘동료들과의 불화’
요르단 이민자의 아들로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난 하산 소령은 버지니아공대 생화학과를 졸업한 뒤 학군장교(ROTC)로 군 복무를 시작했다. 입대 후 2001년 국립 군의대학을 졸업한 뒤 2003년부터 월터 리드 육군병원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다 올해 7월 포트후드 기지로 배치됐다.
범행 동기와 관련해 CNN은 익명을 요구한 한 편의점 주인의 말을 인용해 “하산 소령이 일주일 전에는 동료 무슬림과 싸워야 하는 이라크로 파병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보도했다. CNN은 또 “해외에서 돌아와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겪는 병사들을 치료하면서 전쟁의 참상에 회의를 느꼈고, 정작 자신이 파병을 앞두게 되자 괴로워한 것 같다”고 전했다. 반면 하산 소령의 사촌인 네이더 하산은 “미국 출생임에도 아랍계라는 이유로 부대 동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며 “변호사를 고용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했고 곧 전역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한편 미 당국은 하산 소령이 6개월 전에 이미 인터넷에 자살폭탄 공격을 찬양하는 글을 올려 사법당국의 주시를 받아 왔다고 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군인을 전장에서 잃는 것도 괴로운데 미국 내 기지에서 총격을 당했다는 것은 더 소름끼치는 일”이라며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일각에서는 병력 증파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