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 입대했다가 환자로 제대할 판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9일 03시 00분


美 정신과 군의관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2차 후유증에 시달려

이번에 참사가 난 미국 최대 육군기지 포트후드에서 정신과 군의관으로 일했던 브렛 무어 씨는 5년 만에 일을 그만뒀다. 전쟁 공포와 자살 욕구에 시달리는 군인들과의 끝없는 상담은 그를 지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극도의 피로감 속에 환자들과의 상담은커녕 가족들과의 대화도 “힘들다”고 느꼈을 때 그는 기지를 도망치다시피 나와 버렸다.

지난주 포트후드 기지 정신과 군의관의 총기 난사 사건 이후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군대 내 정신과 의사들의 실태가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8일 AP통신과 시사주간지 타임 최신호는 “상당수 정신과 군의관이 자신들 역시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기지 내 군인들에게서 폭탄테러와 사지 절단, 온몸이 불에 탄 처참한 시신, 전투 중 긴장감과 불안 등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이른바 ‘공감 피로’ 혹은 2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는 않아도 상담을 계속할 경우 마치 자신이 경험한 것 같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격무에 따른 피로감은 상황을 악화시킨다. 해외에 파병된 미군은 55만3000명에 달하지만 이들의 정신상태를 치료하고 관리하는 정신과 군의관은 408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라크에는 폭탄테러가 극에 달했던 2007년만 해도 13만여 명의 군인을 200명이 떠맡아야 했다. 이렇다 보니 정신과 상담을 신청해 놓고 1년 가까이 기다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심리적 에너지가 고갈된 정신과 군의관들은 자신들도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환자가 돼 버리지만 이를 지원해줄 시스템은 전혀 없다는 게 문제.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20년간 근무한 앨런 테일러 박사는 “군대 내 환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노출된 정신과 의사들의 문제가 지금껏 외면당해 왔다”며 “환자뿐 아니라 치료하는 사람들이 떠안고 있는 문제는 과연 누가 치료해줄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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