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총손실 2조엔 이르지만 절반은 구조조정 비용… 영업적자 10%도 안돼 과잉설비-비수익사업 정리 불경기에 기업 경쟁력 높여 적자 파나소닉 실제론 흑자
매출 줄어도 R&D투자 유지 경제 회복되면 도약 예고 “한국기업, 자만할 때 아냐”
《삼성전자, LG전자에 완패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 9대 전자기업의 영업실적이 실제보다 지나치게 과소평가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일본 기업들은 혹독한 구조조정 속에서도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연구개발(R&D) 투자는 오히려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동아일보가 12일 일본 기업의 7∼9월 실적보고서와 연간 실적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 과소평가된 일본 기업의 영업이익
일본 언론이 최근 발표한 7∼9월 영업실적에서 소니는 9대 전자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325억 엔(약 4192억 원)의 적자를 냈다. 그러나 이 회사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구조조정비용을 뺀 실제 영업이익은 125억 엔으로 나와 있다. 일본 전자업체 가운데 최대 매출을 자랑하는 히타치 역시 공식 발표한 영업이익은 258억 엔에 그쳤으나 구조조정비용(594억 엔)을 제외한 영업이익은 852억 엔으로 발표치의 3.3배에 이른다.
구조조정 비용이란 기업들이 생산성 향상과 비용절감을 위해 과잉설비나 비수익사업을 축소하거나 정리해고를 실시함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이다. 비용이 일시적으로 급격히 늘어나 기업들의 재무제표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회계법상 예외적으로 영업비용에서 제외하기도 한다. 매출원가나 판매관리비 등 본래 의미의 영업비용이 아닌 영업외 비용으로 인정해주는 것. 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구조조정비용을 모두 영업비용으로 처리해 외형상으로는 막대한 손실을 냈거나 이익이 줄어드는 착시효과로 나타났다.
이는 엄청난 손실을 기록한 지난해 기업실적에도 적용된다. 9대 기업의 지난해 실적에 따르면 총손실은 2조 엔에 이르지만 손실 내용을 살펴보면 영업적자는 손실의 10%도 안 되는 1850억 엔이다. 반면 지난해 구조조정비용은 8118억 엔으로 손실의 절반이다. 실제로 파나소닉은 지난해 729억 엔의 영업이익을 내고도 3674억 엔의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구조조정을 실시해 결과적으로 3790억 엔의 순손실을 냈다.
LG경제연구원의 유미연 연구원은 “엔고와 글로벌 경기침체로 일본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예전보다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구조조정비용은 또 다른 변수”라며 “구조조정은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종의 투자”라고 강조했다.
○ 미래를 위한 꾸준한 R&D 투자
일본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경기 부침에 따라 요동을 치지만 기업 경쟁력의 근간인 R&D 투자만큼은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일본 9대 전자기업의 설비투자는 2007년 회계연도에 3조2930억 엔이었지만 지난해에는 세계 경기침체로 4130억 엔이 줄어든 2조8800억 엔이었다. 반면 R&D 비용은 같은 기간 2924억 엔에서 2822억 엔으로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기업들의 매출총액이 크게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매출액 대비 R&D 비중은 오히려 5.2%에서 5.7%로 크게 올라간 셈이다.
일본 기업들은 2001년 정보기술(IT) 버블붕괴 때에도 매출액 대비 설비투자를 7.2%에서 6.3%로 1%포인트 가까이 줄였지만 R&D 비중은 6.0%에서 6.2%로 늘렸다. 아무리 힘들어도 R&D와 관련해서는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일본 기업들의 활발한 구조조정과 꾸준한 R&D 투자가 가져올 파급효과에 주목한다. 일본 기업들을 짓누르고 있는 엔고 부담이 완화되고 세계 경기가 회복되면 동절기에 혹독한 체력훈련을 한 결과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의미다.
하나대투증권의 권성률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국내 분위기는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을 제쳤다는 현실과 다른 과도한 성취감에 도취돼 있다”며 “공개된 일본 기업의 실적 수치에는 구조조정비용이 숨어있고 특히 R&D 투자는 되레 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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