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9·11 주모자 뉴욕 민간법정 세운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6일 03시 00분


“안보상업주의 조장
추가 테러 부를수도”
보수진영 강력 비난
재판정 경호도 비상

자신을 2001년 9·11테러의 주모자라고 밝힌 테러 용의자가 옛 세계무역센터 코앞의 민간 법정에 선다. 미국 법무부는 테러 용의자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 씨를 비롯해 5명의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자를 뉴욕의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재판한다고 13일 밝혔다.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이번 결정은 미국을 공격한 용의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데 있어 대단히 중대한 진전이 이뤄졌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국은 200년이 넘도록 법치의 원칙에 따라 범죄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올렸고 희생자들에게는 법 적용의 엄정함과 정확한 법 해석을 제공해 왔다”며 “미국은 공정과 정의에 따라 그 같은 소명에 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홀더 장관은 “모하메드 씨와 나머지 4명의 테러 용의자에게 사형을 구형하도록 검찰에 지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5명의 테러 용의자는 군사재판소에서 재판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군사재판이 어디에서 열릴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미국 내 군사법정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테러 용의자들의 재판은 대부분 관타나모의 군사법정에서 진행되었다. 따라서 법무부가 테러 용의자를 민간 법정에 세우기로 한 결정은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진영과 테러 희생자의 가족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새로운 안보상업주의를 조장하고 있다며 즉각 비난하고 나섰다. 존 베이너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오바마 행정부가 민주당 내 리버럴 진영과 특정 이익집단을 위해 미국 사회의 안보를 위협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난했고, 피터 킹 하원의원(뉴욕·공화)도 “뉴욕을 또 다른 테러 위협에 노출시키는 행위”라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번 결정을 즉각 환영했다. 제럴드 내들러 하원의원(뉴욕·민주)은 “미국이 본토에서 테러 용의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울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미국의 법치에 대한 심각한 모욕행위이며 사실과도 다르다”고 말했다.

민간 법정에서의 재판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테러 담당 연방검사를 지낸 데이비드 라우프먼 변호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테러 용의자들이 스스로를 순교자로 지칭하면서 지하드(성전)를 정당화하는 정치선전의 장으로 활용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테러 용의자들이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벌인 ‘테러와의 전쟁’의 정당성이나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가혹신문을 따지고 들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뉴욕 시 경호와 치안에도 비상이 걸렸다. 뉴욕은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파를 기도한 람지 유세프, 그리고 1995년 유엔본부 등 뉴욕 시 주요 건물 폭파 음모를 계획했던 셰이크 오마르 압둘 라만의 재판을 진행한 경험이 있지만 3000여 명이 사망한 9·11테러 재판에 비하면 비중이 떨어진다. 이에 따라 법원 경비당국과 연방 보안당국은 벌써 테러범들이 머물 예정인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 교정센터에서부터 법원 재판정에 이르는 경로에 일반인의 접근을 차단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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