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고급 창녀’는 34세 의학박사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6일 20시 49분


블로그에 매춘 이야기 띄워 드라마로도 제작 화제

논문 준비하며 돈 아쉬워 손대
“익명으로 살기 지루했다” 고백

2003년 영국의 인터넷에 '낮의 여인: 런던 창녀의 일기(Belle de Jour: Diary of London Call Girl)'이라는 제목의 블로그가 나타났다. 블로그의 저자는 '벨 드 주르'(낮의 여인·루이 브뉘엘의 1967년 영화 '세브린느'의 원제로 낮에는 의사 부인이지만 밤에는 고급 창녀의 이중생활을 하는 여성 이야기)라는 가명을 쓰면서 자신을 런던의 고급 창녀로 소개했다. 블로그는 벨 드 주르가 14개월 간 만난 남성, 그와 나눈 성관계 등을 솔직하고 재미있게 묘사해 큰 인기를 끌었다.

글 솜씨도 만만치 않아서, 그해 일간지 가디언으로부터 가장 문장력이 뛰어난 블로그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국의 오라이언 출판사는 2005년 이 블로그의 내용을 정리한 책 '벨 드 주르: 런던 창녀의 친밀한 모험(Belle de Jour: The Intimate Adventure of a London Call Girl)'을 펴냈다. 2007년에는 ITV2방송에서 블로그와 회고록을 토대로 한 드라마 '런던 창녀의 일기'까지 나왔다. 이 드라마는 성에 대한 유머러스한 접근이라는 점에서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와 비교되기도 했다.

6년간 영국의 언론, 출판, 방송계에서는 벨 드 주르의 정체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진짜 창녀가 맞을까. 내용은 허구일까, 사실일까. 성적 판타지에 심취한 남성은 아닐까. 칙릿(chick-lit) 소설가 이사벨 울프가 벨 드 주르라는 주장도 나왔다. '문학탐정'을 자처한 어떤 교수는 일간지 더 타임스에 "저자는 맨체스터 출신의 사라 챔피언"이라고 장담했다.

그 벨 드 주르가 실체를 드러냈다. 그는 남성도, 소설가도 아닌, 그러나 창녀 생활을 한 34세 브룩 매그난티(Brooke Magnanti)였다. 셰필드대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딴 그는 현재 브리스톨 아동건강연구소의 연구원이다. 그는 자신의 책과 블로그를 가장 신랄하게 비평했던 더 타임스의 기자에게 신원을 털어놨다. "익명으로 지내기가 너무 지루해졌다"는 게 '커밍아웃'의 이유였다. 물론 입방정이 심한 전 남자친구가 언제 비밀을 폭로할지 모른다는 점도 고려했다. 더 타임스가 만난 매그난티는 자그맣고 귀여운, 그러나 환상적인 몸매를 가진 여성이었다. 한쪽 다리에는 전갈 문신이, 한 팔에는 벌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매그난티 씨는 2003년 셰필드대에서 의학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 중이었다. 그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런던으로 왔지만 박사학위가 없는 그에게 알맞은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논문을 마무리하고 구술시험 준비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그였지만 집세를 낼 돈마저 떨어졌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매매춘이었다.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고, 훈련이나 투자가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현금을 손에 쥘 수 있고 또 시간이 남는 일을 찾다보니 그것 밖에 남는 게 없었어요."

그는 인터넷에서 런던의 한 매매춘 회사를 알게 됐고 그곳을 통해 2004년까지 14개월간 창녀로 일했다. 한 회, 두 시간의 만남에 300파운드(약 58만원)를 받았다. 이중 수수료를 뗀 200파운드(약 46만원)가 그의 몫이었다. 일주일에 '손님'은 두서너 명꼴. 14개월간 상대한 손님은? "글쎄요. 수십 명에서 수백 명 사이에요." 자신의 정체를 밝힐 때까지 그가 벨 드 주르라는 사실을 알았던 사람은 연구소 동료 등 6명뿐이었다. 자신의 출판계약을 대행하는 에이전트도 일주일 전에야 비로소 알았다. 그동안은 가명으로 계약했고, 차명계좌로 인세를 받았다. 부모도 모르고 있었다. 현재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는 매그난티 씨는 아이를 낳고 싶다며 장차 태어날 아이에게는 솔직하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겠다고 했다. 그리고 비록 정체가 드러났지만 블로그도 당분간 지속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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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추천 많은 댓글

  • 2009-11-17 05:45:58

    한때는 영국사람들이 지들은 도덕적으로 깨끗한 민족이라는 자부로 살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떠나고 지금은 그저 추잡한 민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히려 더하는 면도있다. 하나님이 떠나면 이렇게 된다. 가족도없고 남자는 강도, 여자는 창녀로 돈만 벌면 어떤짓을 해도 된다는 사상이 팽배해진다. 무서운 일이다.

  • 2009-11-16 21:48:30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고, 훈련이나 투자가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현금을 손에 쥘 수 있고 또 시간이 남는 일을 찾다보니 그것 밖에 남는 게 없었어요. 좋겠구나. 남자는 그런 일거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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