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王발언까지 TV 공개, 민주당 ‘금기 깨기’ 파문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9일 03시 00분


가메이 금융상, 일왕과 나눈 대화 밝혀 시끌

일본 민주당 정권이 출범한 후 각료 등이 일왕과 관련한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정치인이 일왕과 관련한 문제를 입에 올리는 것은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던 ‘금기’였다.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 금융상은 24일 왕궁 오찬 자리에서 아키히토(明仁·사진) 일왕과 나눈 대화 내용을 27일 TV에 나와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일왕에게 “권력의 상징이던 에도성(현재의 왕궁)에 살지 말고 교토(京都)나 히로시마(廣島)로 옮겨 사는 게 더 어울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후 기자들에게 “폐하는 ‘나는 교토를 좋아한다’라고 말했지만 히로시마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고 전했다. 각료가 일왕과의 대화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1973년엔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방위력’ 관련 발언을 외부에 흘렸던 마스하라 게이키치(增原惠吉) 당시 방위상이 “왕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난을 견디지 못해 사임했을 정도다.

이달 중순엔 일본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의 일왕 면담 과정을 놓고 온 나라가 들썩이기도 했다. 일왕 면담은 1개월 전에 신청해야 한다는 오랜 관행을 어기고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이 단기간에 성사시켰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왕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오자와 간사장은 궁내청 장관의 사임을 요구하면서 “헌법정신에 따르면 폐하는 내각의 결정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반박했다. 이에 대해 야당과 일부 여론은 “감히 왕을 이런 식으로 말하다니 무례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하는 등 논란이 됐다. 일부 언론은 사설을 통해 비판하기도 했다. 과거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한 달에 두 번이나 잇따라 일어난 것이다.

10월 말에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이 국회 개회식에서의 일왕 인사말과 관련해 “폐하의 생각이 포함된 인사말을 하는 노력은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가 파문이 일자 사과한 바 있다. 일왕은 국회가 소집될 때마다 인사말을 하지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각료회의의 승인을 받은 2, 3줄의 문장만 되풀이해 왔다. 오카다 외상의 제안은 매번 앵무새처럼 말하지만 말고 일왕 스스로의 생각을 얘기하면 좋겠다는 취지였지만 이 정도도 용납되지 않을 정도로 정치권에서 일왕을 언급하는 것은 극도로 민감한 사항이었다.

일왕과 관련한 이런 금기는 겉으로는 헌법상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일왕을 정치무대에서 거론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이지만, 실제로는 일왕을 성역시하는 일본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평어를 쓰는 신문과 방송에서조차 왕실 구성원에 대해선 ‘천황 폐하’ ‘OO사마(님)’ ‘말씀하셨다’ 등 극존칭을 쓴다. 올해 9월 도쿄에서 열렸던 한일축제한마당 때 하토야마 총리의 부인 미유키(幸) 여사는 ‘조용히’ 입장했으나 일왕 사촌동생 다카마도노미야(高円宮)의 부인이 입장할 때에는 모든 참석자가 기립한 채 맞았다. 공식 의전에 따르면 모든 왕실 구성원 다음에 총리가 나온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히로히토 일왕이 “나는 신이 아니다”란 인간선언을 했을 때 일본 국민이 큰 충격을 받았을 만큼 일본 사회에서 일왕은 오랫동안 신격화돼 왔다. 2000년에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당시 총리가 “일본은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신의 나라”라고 말해 국내외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 출범 후 정부 여당의 핵심 인사들이 기존의 성역을 잇달아 건드리면서 ‘일왕 금기’가 도전을 받는 양상이다. 정권 핵심 인사들의 ‘일왕 언급’이 일왕에 대한 정치권의 기존 태도와 성역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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