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왕족학교’ 가쿠슈인(學習院·사진)이 젊은 왕족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일본 왕족은 전통적으로 가쿠슈인의 유치원부터 초중고교와 대학까지 다니는 게 관례였으나 최근 일반적인 ‘평민학교’로 진학하는 왕족이 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7일 보도했다.
왕족이 가쿠슈인 이외의 학교로 진학한 첫 사례는 2008년 9월 일왕의 사촌동생 다카마도노미야(高円宮)의 장녀 쓰구코(承子·23)가 와세다대 국제교양학부에 입학한 것이다. 그는 가쿠슈인 여대와 영국 에든버러대를 중도에 그만두고 와세다를 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해외유학을 제외하고 가쿠슈인에 적을 두지 않은 첫 왕족이었다.
‘첫 외도’가 왕실에서 용인되자 가쿠슈인을 가지 않는 사례가 줄을 이었다. 지난해 4월엔 다카마도노미야의 3녀 아야코(絢子·19)가 조사이(城西)국제대 복지종합학부에 입학했다. 일왕의 차남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의 장녀 마코(眞子·18)는 올 4월 국제기독교대에 진학한다. 일왕의 유일한 손자로 왕위계승 서열 3위인 히사히토(悠仁·4)는 올 4월 오차노미즈(御茶の水)여대 부속 유치원에 들어간다. 유치원부터 가쿠슈인을 외면하기는 처음이다.
가쿠슈인은 에도(江戶)시대 말기인 1847년 귀족 자녀의 교육기관으로 교토(京都)에 세워진 후 메이지(明治)유신 직후인 1884년 도쿄로 옮겨져 왕실 직속 관립학교가 됐다. 1926년엔 ‘왕족 취학령’이 공포돼 왕족은 원칙적으로 가쿠슈인에서 공부하도록 규정됐다. 취학령은 2차대전 직후 폐지됐지만 나루히토(德仁) 왕세자를 비롯한 모든 왕족이 예외 없이 가쿠슈인을 다녔다.
이처럼 100년 이상 왕족학교의 위상에 흔들림이 없던 가쿠슈인이 최근 잇달아 젊은 왕족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신세대 왕족들의 욕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낡은 교육내용 때문이다. 쓰구코는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를, 아야코는 아동복지 전공을, 마코는 폭넓은 교양 공부를 원했으나 가쿠슈인은 어느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히사히토의 부모인 일왕 차남은 아들을 3년짜리 유치원에 보내고 싶었지만 가쿠슈인 유치원은 2년제뿐이었다.
가쿠슈인에는 문학, 이학, 법학, 경제학 등 4개 학부만 있고 40여 년 동안 새로운 학부가 설치된 적이 없다. 왕족학교라는 위상만 믿고 시대 흐름과 젊은층의 욕구에 귀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왕실의 젊은 부모들이 자식들만큼은 좀 더 넓은 세상을 접하고 또래 아이들과 자유롭게 어울리기를 바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도 가쿠슈인 외면에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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