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대한민국이 뛴다]<6>베트남 의료지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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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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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지어준 병원에서 옛 전쟁상처까지 치료해요”


《5일 방문한 베트남 중부 꽝남 성 쭐라이 개방경제구역에 있는 베트남중부지역종합병원 건설현장은 아직 거대한 공터 그 자체였다. 지난해 12월 시작한 본관 병동의 터를 잡기 위해 굴착기 두 대가 끊임없이 황토를 퍼 트럭에 담았다. 하노이와 호찌민을 오가는 1번 국도를 접하고 있는 건설현장 정문 바로 옆에는 건설 자재를 들여놓을 야적장 터를 다지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옥이호 프로젝트매니저는 “당신이 공사현장을 보러 온 첫 번째 한국 기자”라고 말했다.》

아직은 황량한 20만 m²의 터에 불과하지만 2011년이면 이곳에 총건축면적이 3만3654m²인 500병상 규모의 현대식 종합병원이 들어선다. 이 병원의 건설비 3500만 달러는 한국 정부가 전액을 부담한다. 2004년 한국과 베트남 정상 간 합의로 시작된 이 병원 건설은 KOICA의 역대 무상원조 사업 가운데 단일 규모로는 가장 큰 사업이다.

아직 터 파기 공사 단계임에도 지역 주민들의 관심은 컸다. 건설현장을 지켜보던 인근 여관 주인 윙룽 씨(45)와 잡화점 주인 윈띨레 씨(36·여)는 “집 바로 앞에 큰 병원이 생겨 이제 아이들이 아파도 걱정이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내년이면 완공될 엄청난 규모의 병원이 벌써 자리 잡고 있는 듯했다. 최근 베트남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는 두산중공업과 SK 등 한국 기업들도 이 병원을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낙후된 중부지역 개발을 위해 이곳에 병원 자리를 정한 베트남 정부의 관심도 매우 컸다. 병원장으로 내정된 턴쫑롱 씨는 “20일 이곳에서 열릴 기공식에 (베트남) 총리를 초청했는데 오시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문득 하노이에서 비행기를 타고 중부 휴양도시 다낭에 내려 이곳까지 1시간 반 동안 차를 타고 오는 동안 건설 당국이 1번 국도의 곳곳을 보수하고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베트남 고위 관리의 병원 기공식 방문을 준비하는 것 같다고 현지인들은 얘기했다.

이곳에 한국이 병원을 건설하는 것은 양국 간 과거사를 정리하는 의미도 있다. 이욱헌 베트남 KOICA 사무소장은 “쭐라이 지역은 과거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 청룡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라며 “이 병원이 불행했던 두 나라의 과거를 씻고 우호관계를 증진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의료지원사업은 15년 전인 1995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노이 중심가의 세인트폴 병원단지 안에 있는 한국-베트남 친선병원이 그 상징이다. 한국은 세 차례의 사업을 통해 180만 달러를 지원했다. 1차(1995∼1996년)와 2차(1998∼2000년) 사업 때는 각각 25만 달러를 무상 원조해 의료장비와 기술을 전수하고 한국인 의사를 파견했다. 3차 사업(2005∼2006년) 때는 130만 달러를 지원해 지상 4층, 지하 1층의 별도 병원 건물을 세웠다.

“안 비 람 싸오(어디가 불편하세요)?”

“또이 비 자 자이(배가 아파서 왔어요).”

4일 오전 방문한 한-베 친선병원 1층 진료실에서는 한국인 국제협력의사 안효승 씨(33)가 복통을 호소하는 30대 현지 남성을 진료하고 있었다. 안 씨는 이 환자를 포함해 기자가 방문한 이날 오전에만 한국과 베트남인 7명을 진료했다. 보통 하루 30∼40명의 환자가 이 병원을 찾는다.

지난 15년 동안 베트남인들에게 입소문이 퍼져 현지인들 사이에 이 병원의 인지도가 높다. 후으이응 씨(30·여)는 새벽부터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난다며 울음을 터뜨린 딸 쩜앵(3)을 부둥켜안은 채 로비에서 안 씨와 상담했다. 그녀는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가 이 병원을 추천해줘서 왔다. 깨끗하고 의사들도 친절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인 의사가 있어 현지 교민들도 든든하다.

이 병원 부원장인 타이손 씨는 “한국 정부와 KOICA가 과거처럼 경험 많은 중견 의사들을 계속 파견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1995년 이후 임상 경험이 많은 의사들을 파견하는 ‘정부파견의사’ 제도를 운영했다. 그러다 2008년부터 전공의 자격을 막 취득한 젊은 의사들을 군 복무 대신 파견하고 있다. 타이손 부원장은 베트남에 특히 많은 교통사고 환자를 치료할 정형외과와 성형외과 의사가 많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KOICA는 꽝남 성 중부지역종합병원과 한-베 친선병원 외에 베트남 전역에 11개의 지방병원도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이곳 병원들에는 한국인 의사 대신 임상병리사와 물리치료사, 간호사 등이 2년 정도씩 머물며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낙후된 시골 지역에서 일하며 지역 주민들에게 ‘도와주는 나라 한국’의 이미지를 심고 있다.

꽝남·하노이(베트남)=글·사진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하노이서 4년간 2만5000명 무료진료
KOICA 지원받는 선의병원 김시찬 원장 ▼


4일 베트남 하노이 선의병원 진료실에서 한국인 김시찬 원장(오른쪽)이 농부인 찌에우 씨를 진료하며 상태를 설명해주고 있다.
4일 베트남 하노이 선의병원 진료실에서 한국인 김시찬 원장(오른쪽)이 농부인 찌에우 씨를 진료하며 상태를 설명해주고 있다.
4일 오후 베트남 수도 하노이 도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속손 현. 한국인 의사 김시찬 원장(53)이 운영하는 선의병원 마당 한쪽에서는 굴착기가 부지런히 땅을 파고 있었다. 김 원장은 “이 지역 의사들을 모아 교육할 강당과 재활센터 등 새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별관을 짓고 있다”며 기자를 바로 옆 2층짜리 본관으로 안내했다.

김 원장은 이곳에서 베트남 현지 의료진 10여 명과 함께 지역 빈민들을 무료로 진료하고 있다. 이곳은 하노이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2006년 개원한 선의병원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만든 선의복지재단과 한국 기부자 등이 후원하는 일종의 민간단체(NGO)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이곳에 매년 1억 원 정도를 지원하는 최대 후원기관이다.

김 원장은 1995년 한-베트남 친선병원의 초대 정부 파견 의사로 베트남에 발을 디뎠다. 이후 5년 동안 현지인들과 한국 교민들을 치료하다 2001년 귀국했다. 그러나 2002년 속손 현과 같은 베트남 빈곤지역의 열악한 의료 실태를 개선하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다시 이곳에 왔다.

선의병원은 현지 병원들이 치료하지 못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2차 진료기관이다. 개원 이후 2만5000명이 김 원장의 진료를 받았다. 이날 입원실에 누워 있던 농부 찌에우 씨(36)는 만성흡수장애로 2년째 치료를 받고 있다. 장이 흡착돼 수술을 받았지만 소화기능이 회복되지 않아 밥을 먹어도 몸무게가 30kg에 불과한 상태다.

김 원장은 현지 의료진이 스스로 빈곤한 지역을 개발해 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지역사회 개발사업도 벌이고 있다. 김 원장은 “한국의 젊은 의사들이 지구촌의 어려운 환자들에게 눈을 돌려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더 많은 기부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주의 베트남 주민들을 치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장차 북한이 개방되면 북한 주민들에게 보건 의료사업을 펼치고 싶다”고 덧붙였다.
▼ “한국인 세금으로 짓는 새 병원 베트남 빈민층에 큰도움 될것”
쩐티짱흐엉 보건부 국제협력국장 ▼



쩐티짱흐엉 베트남 보건부 국제협력국장(사진)은 2004년부터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중부지역종합병원 건립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는 “한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지어지는 새 병원을 양국의 우호 증진과 중부지역 주민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잘 활용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병원을 중부지역의 낙후된 지역에 세우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

“중부지역은 전쟁의 피해가 가장 많고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하지만 경제적인 잠재력이 크고 주민들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중부지역 개발 차원에서 병원 건립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앞으로 병원을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

“이 병원은 단순히 꽝남 성 주민들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베트남 중부지역의 거점병원으로서 이 지역 전체 주민들을 치료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한국과 베트남의 보건의료 협력에 거는 기대는….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이후 한국과 베트남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됐다. 병원 건립을 계기로 양국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도 더 많이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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