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G20에서 2020 G10으로]<7·끝>경제지표에서 삶의 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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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5일 03시 00분


“삶의 질 높여야 지속 성장”… 佛-스위스, 국가정책으로 추진

스위스는 세계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아름다운 자연과 국민 만족도가 높은 정치제도, 높은 소득 등이 주요 요인이다. 알프스 산맥의 별장에서 여유롭게 여가를 즐기는 스위스의 한 가족. 사진 제공 스위스 관광청
스위스는 세계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아름다운 자연과 국민 만족도가 높은 정치제도, 높은 소득 등이 주요 요인이다. 알프스 산맥의 별장에서 여유롭게 여가를 즐기는 스위스의 한 가족. 사진 제공 스위스 관광청

스위스의 비결은
사소한 결정도 주민 토론
사회참여 높고 정치 신뢰

프랑스의 사회통합은
이민자-노숙인 문제 심각
시민단체 나서 해법 찾아

출산율 꼴찌 한국은
인구 줄면 성장 불가능
국가-기업-가정 노력해야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해 12월 20일 스위스 최대도시 취리히 시의 취리히 호수. 이상 한파가 매서웠지만 주민 수백 명은 가족 친구들과 함께 흥겨운 음악 속에 글루바인(뜨거운 포도주)과 핫도그를 먹으며 추위를 오히려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날 유럽의회가 주관한 ‘평화의 불’ 행사에 참여한 주민들은 종교와 상관없이 이 행사를 지역통합 축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엘레아 힘멜스바흐 씨(30·디자이너)는 “베들레헴에서 점화돼 유럽 25개국을 거쳐 이곳으로 들어오는 평화의 불을 받아가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왔다”며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을 느끼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 매년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날의 평화로운 광경이 보여주는 것처럼 취리히는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휴먼리서치컨설팅이 세계 214개 도시를 대상으로 실시한 ‘삶의 질’ 평가에서 7년 연속 1위로 꼽혔다. 이처럼 높은 삶의 질은 자연스럽게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져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13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스위스는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2008년 기준 경제규모가 국내총생산(GDP) 세계 15위로 스위스(21위)보다 앞서지만 WEF가 조사한 국가경쟁력 순위는 19위로 스위스에 한참 뒤처져 있다. 외적인 경제성장만으로는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사회적 통합과 정치 안정, 사회복지 시스템 등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돼야만 세계 일류 국가로 도약할 수 있음을 스위스 등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 스위스 세계1위 ‘삶의 질’의 비결은

유럽 한복판의 약소국으로 대표적인 다민족 국가였던 스위스는 19세기 중반 신교와 구교 간의 종교전쟁을 겪는 등 갈등이 심각한 나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19세기 말부터 다수파와 소수파가 행정권을 공유하는 ‘합의 민주주의’ 모델을 확립하면서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 소수파의 정부 참여를 제도화하면서 국민 통합을 이뤄낸 것이다.

취리히대의 크리에시 한스페터 교수(정치학)는 “스위스의 경제적 성공에는 성실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안정적이면서도 민주적인 국내 정치제도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실제 스위스는 주요 국정 사항에 대해 구성원이 동의하는 직접민주주의 형태의 독특한 정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매년 헌법이 개정되고 웬만한 국정 이슈는 국민투표에 부쳐져 국민 개개인의 동의 및 각 칸톤(스위스 연방을 구성하는 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사소해 보이는 사항까지 주민들이 모여 토론하고 투표로 결정하기 때문에 사회참여도가 높고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 상당히 두터운 편이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통합으로 안정적인 사회체제가 구축됐고, 이 테두리 내에서 사는 국민의 삶의 만족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스페터 교수는 “사회적 안정뿐만 아니라 훌륭한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환경친화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점과 의료 교육 교통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이 스위스가 경쟁력 1위 국가로 올라선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 사회 통합 나서는 프랑스 시민단체

프랑스 피에르재단은 평생을 노숙인 등 소외계층을 위해 헌신한 아베 피에르 신부가 새운 빈민구호재단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이 단체는 어느 때보다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민자 및 노숙인 문제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프랑스의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토프 로베르 피에르재단 연구개발위원장은 “경제위기로 노숙인이 늘고 있어 노숙인 쉼터를 만들고 있다”며 “불법 이민자 등 어떤 사람이라도 최소한 잘 곳은 마련해 주어야 하기에 정부를 상대로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단체 관계자들은 사회적 갈등을 원만하게 해소하는 것이 결국은 모든 프랑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요즘 유럽 각국이 골치를 앓고 있는 대표적인 사회적 갈등이 이민자 문제다. 국가경쟁력 1위를 차지한 스위스도 예외가 아니다. 스위스는 지난해 12월 초 국민투표에서 ‘무슬림 첨탑 금지법’을 찬성 58%, 반대 42%로 통과시켜 국제적 논란과 이슬람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스위스 내에서도 다문화 사회는 불가피한 현상이며 이를 위해 슬기로운 통합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다니엘 브륄마이어 취리히 칸톤정부 대외협력국장은 “다문화 시대에 다양한 이민자들이 스위스에 더욱 잘 적응해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임무 중 하나”라며 “이민자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한국 자살률 OECD 최고, 출산율은 최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사이먼 채플 선임연구원은 OECD 국가들의 ‘삶의 질’ 지표를 통합 분석해 발표하는 ‘한눈에 보는 사회상(Society at a Glance)’의 대표 저자다. 그는 지난해 12월 11일 프랑스 파리의 OECD 본부를 찾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전년 통계 작성 때 놀랐던 경험담을 소개했다. 채플 연구원은 당시 OECD 회원국의 자살률 통계를 집계하다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고 한다. 한국의 자살률이 OECD 평균치보다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이다. 그는 OECD에 파견 나온 한국 공무원들에게 이 통계가 맞는지 거듭 확인했다. 데이터는 정확했다.

채플 연구원은 “한국이 지난 30여 년간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최근 자살률과 출산율 등의 통계에서 나타나듯이 ‘삶의 질’ 측면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삶의 질을 높이지 않으면 경제성장도 지속 가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의 자살률은 1990년대 후반 이후 급속히 증가해 OECD 회원국 중 최고를 기록했다.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24.7명으로 OECD 평균 11.7명의 배가 넘었다. 반면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해외 전문가들은 이 상태로는 한국이 더 이상의 경제성장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고 충고하면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임을 강조했다.

채플 연구원은 저출산 문제 해결책으로 프랑스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프랑스도 1990년대 중반까지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겪었지만 이후 과감한 육아 대책과 투자로 출산율이 높아져 현재는 유럽 최고 수준”이라며 “한국도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과 함께 정부 기업 가계 모두가 새로운 발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GDP 높아지면 삶의 질 좋아진다?
반대인 경우 많아 새지표 개발 필요”
파리정치대 피투시 교수▼



국내총생산(GDP)이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질을 어느 정도 보여줄 수 있을까. GDP가 크다고 반드시 삶의 만족도도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GDP와 삶의 질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례도 적지 않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GDP를 보완하는 새로운 지표를 개발하자고 제안했고 세계적 전문가들이 모여 2008년 1월 대통령 직속의 ‘경제성취와 사회진보 측정위원회’를 구성했다. 노벨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위원장이어서 ‘스티글리츠 위원회’로 불리기도 한다.

프랑스의 대표적 거시경제학자인 장폴 피투시 파리정치대 교수(67·사진)는 이 위원회 간사로 새 경제지표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그를 지난해 12월 파리 센 강변 연구실에서 만났다.

―새 경제지표가 왜 필요한가.

“구성원 간 격차가 커지면서 현재 평균을 보여주는 경제지표들은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에서 2007년 저소득층의 재화가격이 7% 오른 반면 부유층의 물가는 5% 내렸다. 이들이 소비하는 품목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기존 GDP를 어떻게 보완하고 삶의 질은 어떻게 측정하나.

“예컨대 자동차가 늘어 교통량이 증가해도 GDP는 증가한다. 하지만 교통체증은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지진해일(쓰나미)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해도 건축이나 토목수요가 늘어 GDP가 증가할 수 있다. 하지만 지진해일이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 상황을 좀 더 잘 보여주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하고 있다. 건강, 교육, 보안 등 ‘삶의 질’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들은 이미 개발된 것도 많다. 하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중요성이 다르기 때문에 가중치에 대해 이견이 있다. 따라서 공공의 토론과 연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새 지표가 어떤 역할을 하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만 봐도 실제 부(富)가 줄어들고 있는데도 자산가격 버블 때문에 부가 증가한다고 착시현상을 일으켜 과잉투자를 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현재 개발 중인 새 버블 지표가 나오면 버블을 조기에 발견하고 대책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별취재팀>

팀장=박현진 경제부 차장
▽미국 영국=박형준 기자
▽핀란드 프랑스 스위스=정재윤 기자
▽싱가포르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이세형 기자 (이상 경제부)
▽독일 오스트리아=강혜승 기자
▽스페인 중국=한상준 기자
(이상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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