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제로 세계의 그린 도시를 가다]<5·끝>해저 지열 이용하는 핀란드 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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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0일 03시 00분


버려진 에너지 줍고… 잠자는 에너지 깨워… 2년만에 생태마을로

무공해 해저지열로 냉난방 해결
메탄가스 내뿜던 쓰레기매립지는
30년 쓸 에너지 저수지로 탈바꿈

2008년 7월 바사 주택박람회 때 수빌라티 해안가 진입로인 ‘날다람쥐 길’ 양쪽으로 들어선 연립·단독주택들.
2008년 7월 바사 주택박람회 때 수빌라티 해안가 진입로인 ‘날다람쥐 길’ 양쪽으로 들어선 연립·단독주택들.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서북쪽으로 400km 떨어진 해안도시 바사. 이곳은 유럽을 대표하는 에너지산업 도시로 불린다. 특히 2년 전부터는 ‘잠자는 에너지(sleeping energy), 버려진 에너지(wasted energy)’를 활용하는 저탄소 생태 주거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도시가 탈바꿈한 계기는 2008년 7월 한 달간 열렸던 주택박람회였다. 매년 핀란드 곳곳을 돌아가며 열리는 주택박람회는 연인원 15만 명이 찾는 핀란드의 대표적인 여름 축제. 빼어난 경관에 각종 주거 인프라를 갖춘 지역이 박람회 용지로 정해지면 시민들은 그 땅을 분양받아 첨단 주택기술과 창의적인 디자인을 결합한 새 주택을 선보인다. 2008년엔 시내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수빌라티 해안가에서 열렸다. 15개월 준비 끝에 선보인 당시 주택박람회는 해저 지열을 이용한 냉난방 시스템과 메탄가스를 이용한 전력 및 난방 시스템을 도입해 핀란드 전역에서 이례적으로 높은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12월 7일 새벽 헬싱키에서 1시간여 비행기를 타고 바사 공항에 내려 박람회 주거단지를 찾았다. ‘날다람쥐 길’로 불리는 도로 양쪽에 들어선 44채의 크고 작은 연립, 단독주택들은 외벽을 푸른색과 빨간색 원색으로 칠해 무채색이 대부분인 일반적인 핀란드 주택들과는 겉모습부터 달랐다. 여기에 채광을 강조하고 주변 경관이 잘 보이도록 고려한 L자 형의 개방적인 주택 설계는 전통적인 스타일과 조화시키려는 노력도 독특했다.

이곳을 방문한 날엔 자작나무 숲에 둘러싸여 세련되고 아늑해 보이는 아파트들에서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었다. 안내를 맡은 에너지설비 전문기업 마테베 소속 마우리 리에스코스키 매니저는 “이 지역의 자랑거리인 저탄소 냉난방 공급 시스템의 비밀은 저 아래 숨어 있다”며 주거단지 앞쪽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보트니아 만을 가리켰다.

꽁꽁 얼어 호수처럼 보이던 보트니아 만은 바사에서 서쪽으로 스웨덴 동부 해안까지 100km 넘게 펼쳐진 바다. 이 바다 밑에는 300m 길이의 해저 지열 파이프가 무려 26개나 묻혀 있다. 보통 지열을 흡수하는 파이프는 땅속에 수직으로 1km 넘게 깊이 묻는다. 그러나 리에스코스키 매니저는 “이곳의 해저 지열 파이프는 바다 바닥을 파고 3∼5m 깊이에 해수면과 수평으로 묻었다. 지열을 최대한 많이 흡수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나온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해저 지열은 한겨울에도 8∼9도를 유지한다. 이 지열을 난방열로 바꾸는 마테베의 저온 에너지 네트워크는 저온을 고온으로 바꾸는 히트펌프라는 장치로 높은 열효율을 자랑한다. 주거단지 2층짜리 주택에 부모와 함께 사는 유시 루오파예르비 씨는 “탄소 발생이 없는 무공해인 데다 난방비도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이 해저 지열은 여름철 냉방에도 이용된다.

바사 주택박람회 주거단지의 저탄소 시스템은 두 가지다. 주거단지 앞쪽의 보트니아 만 바닥 3∼5m 밑에는 300m 길이의 해저 지열 파이프 26개가 있다. 열 흡수량을 높이기 위해 해수면과 수평으로 파묻었다. 이 파이프들은 한겨울에도 8∼9도로 유지되는 지열을 모은다. 주거단지에는 세계 최초의 고체산화물 연료전지 발전소가 세워져 있는데 이 발전소는 2km 거리에 있는 쓰레기 매립지에서 배출되는 메탄가스로 전력과 난방열을 생산한다.
바사 주택박람회 주거단지의 저탄소 시스템은 두 가지다. 주거단지 앞쪽의 보트니아 만 바닥 3∼5m 밑에는 300m 길이의 해저 지열 파이프 26개가 있다. 열 흡수량을 높이기 위해 해수면과 수평으로 파묻었다. 이 파이프들은 한겨울에도 8∼9도로 유지되는 지열을 모은다. 주거단지에는 세계 최초의 고체산화물 연료전지 발전소가 세워져 있는데 이 발전소는 2km 거리에 있는 쓰레기 매립지에서 배출되는 메탄가스로 전력과 난방열을 생산한다.
바사 저탄소 에너지 기술의 두 번째 핵심은 주거단지를 둘러싼 자작나무숲 한가운데 세워진 ‘신에너지 발전소’.

1947∼2000년 바사 전역의 쓰레기를 매립한 20ha 넓이의 쓰레기 매립지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었다. 이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3배나 강력한 온실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또 담뱃불만으로도 폭발할 정도로 위험해 메탄가스 저장시설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불태우는 것밖에는 없앨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바사 시는 메탄가스로 전력과 난방열을 생산하는 발전시설(고체산화물 연료전지 발전)을 개발해 이 골칫덩어리를 에너지원으로 탈바꿈시켰다. 매립지 메탄가스 저장소와 신에너지 발전소는 2km 길이의 파이프로 연결돼 있다. 이 프로젝트를 맡았던 민간기업 베릇실레 소속 리스토 레욘 매니저는 “150가구에 전력과 난방열을 공급하고 있다”며 “쓰레기 매립지 메탄가스는 앞으로 최대 30년까지 이용할 수 있는 양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곳 주택 설계도 에너지 효율을 특별히 고려했다. 일단 집 안으로 들어온 난방열을 최대한 가둬 집안을 데운다. 외부로 배출되는 난방열도 80%를 환기를 통해 다시 회수할 수 있도록 지어졌다. 3중창은 기본이다.

바사 시는 해저 지열과 메탄가스 재활용으로 주거단지에 매년 필요한 전력의 20%, 난방열의 60%를 자급자족하고 있다. 바사에너지재단에 따르면 석유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할 때보다 매년 1800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인다고 한다. 잠자던 에너지, 버려진 에너지이니 값도 싸다. 매년 이곳으로 이사 오겠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인구가 늘면 늘수록 전기료와 난방비 단가는 더 낮아진다.

마르쿠 루미오 바사 시장은 “주택박람회 때 효율이 입증된 저탄소 에너지 기술을 그대로 적용할 새로운 주거단지들을 계속 세워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빵공장 열 모아 난방… 반죽 찌꺼기는 에탄올 원료로 ▼

친환경 제빵업체 ‘프리물라’


“빵과 샌드위치를 만들고 운송할 때 생기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리물라의 빵 포장지는 투명한 비닐처럼 보이는 부분까지 녹말성분으로 만든 친환경 포장지다. 유하 발카모 프리물라 대표는 “버린 뒤 20주가 지나면 자연적으로 분해된다”고 말했다.
프리물라의 빵 포장지는 투명한 비닐처럼 보이는 부분까지 녹말성분으로 만든 친환경 포장지다. 유하 발카모 프리물라 대표는 “버린 뒤 20주가 지나면 자연적으로 분해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8일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중견 제빵업체 프리물라(봄에 처음 피는 꽃이라는 뜻) 본사에서 만난 마케팅홍보책임자 울라 발카모 씨는 프리물라가 지구온난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핀란드 정부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80% 감축 계획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프리물라도 기후변화에 대한 오래된 관심을 실천하기로 했다는 것. 발카모 씨는 “마티 반하넨 총리는 온실가스 감축정책을 발표하면서 국민들에게 ‘현명한 음식’을 선택할 것을 함께 강조했다”고 말했다.

프리물라가 올해 말까지 3500만 유로(약 564억 원)를 투자해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새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자 핀란드 안팎에서 화제가 됐다. 온실가스 감축은 에너지 산업이나 건축물의 냉난방, 전기자동차 등과 관련돼 있다는 생각이 일반적이기 때문이었다. 발카모 씨는 “빵과 샌드위치를 만드는 과정과 포장 과정, 제품을 차로 운송하는 과정뿐 아니라 직원들의 출퇴근까지 생각하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여지는 매우 많다. 이산화탄소를 줄일수록 기업의 수익은 늘어난다”고 말했다.

프리물라는 우선 지금까지 빵 반죽을 보관하고 발효시키는 냉장설비에서 발산하던 열을 회수하는 시스템을 갖춰 빵 반죽에 필요한 물을 데우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빵을 만들 때 나오는 뜨거운 공기는 열을 회수하는 환기 장치를 이용해서 공장으로 유입되는 차가운 공기를 데워 공장의 난방에 이용한다. 빵을 반죽하다 남은 밀가루 덩어리는 지금까지 인근 돼지 농장에 사료로 보냈었다. 그러나 신축 공장을 지을 경우 연간 33만 kg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반죽 찌꺼기는 바이오디젤 생산업체 St1에 팔기로 했다. St1이 반죽 찌꺼기로 생산한 에탄올은 프리물라 빵 운송차량 25대의 연료로 사용할 계획이다. 빵 포장지는 폐기한 뒤 20주가 지나면 자동으로 분해되는 친환경 용지를 사용하고 있다.

유하 발카모 프리물라 대표는 “그래도 줄이지 못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터키의 풍력발전소에서 탄소배출권을 구입해 상쇄시키기로 했다”며 “저탄소 경영은 기업의 새로운 수익 모델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 루미오 바사 시장

“바사 주민 6명중 1명 에너지 산업에 종사… 신기술이 고용 늘려”

바사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최대 규모의 에너지 클러스터(기업 대학 연구기관의 집적단지)를 갖추고 있다. 바사 전체 인구 6분의 1인 1만 명이 에너지 산업에 몸담고 있으며 에너지 산업의 1년 매출은 40억 유로(약 6조5200억 원)다. 마르쿠 루미오 바사 시장(사진)이 “탄소제로도시를 만들기 위한 신재생 에너지 기술은 고용 창출과 직결된다”고 강조한 것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에너지 산업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베릇실레, ABB, 스위치 등 바사에 본사나 생산공장을 갖춘 1000개의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1년 매출의 70%를 수출로 거둔다. 그러나 바사 주택박람회의 성공처럼 기업들은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도 높다. 바사 주택박람회 주거단지에 세운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 발전소가 한 예다. 이 발전시스템은 애초 ‘상용화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모델은 아니었다고 한다. SOFC 기술을 적용한 세계 최초의 발전소였고 주거단지 규모도 작아 전기 출력은 20kW, 난방 출력은 14∼17kW에 불과했기 때문. 그러나 루미오 시장과 지역 기업인들은 “새 발전소는 작은 건물에 불과하지만 대단히 상징적인 시설이 될 것”이라는 데 뜻을 모으고 개발을 계속해 성공을 거뒀다. 발전시설을 개발한 베릇실레는 이때의 성공을 바탕으로 같은 종류의 선박 엔진까지 개발했다.

바사 에너지 산업의 한 축은 시와 기업 대학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지역 컨설팅 업체들이다. 각 기관 간의 협력과 국내외 홍보를 전담한다. 대표적인 컨설팅 업체 바세크의 라이네 바사노야 선임 경영 고문은 “탄소제로도시 건설은 시와 기업 대학의 효율적인 협력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바사·헬싱키(핀란드)=글·사진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도움 주신 분들

바사 교민 전미숙 씨
KOTRA 헬싱키무역관 김성환 관장, 조재은 과장
한국외국어대 스칸디나비아어과 임규성 씨
바사워터 페르티 레이니카이넨 경영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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