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2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티 지진 대참사의 지원을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 국가의 헤게모니 싸움이 치열하다. 카리브 해의 지정학적 요충지인 아이티에 영향력 확대를 위한 각국의 ‘구호외교’ 경쟁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은 점령군인가=미국은 15일 아이티 정부로부터 주요 공항 관제권을 넘겨받은 이후 아이티의 치안과 행정을 사실상 ‘접수’했다. 1697년부터 1804년까지 100년 이상 아이티를 식민지 지배했던 프랑스가 이에 발끈했다. 특히 16일 미군이 수도 포르토프랭스 공항에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탄 전세기는 착륙을 허가하면서 구호품을 실은 프랑스와 브라질 항공기는 착륙 허가를 내주지 않아 회항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양국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프랑스의 알랭 주아양데 협력담당 국무장관은 18일 유럽1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선택해야 한다”며 “미국의 역할은 아이티를 돕는 것이지 점령하는 게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도 “미국이 구조대원이 필요한 아이티에 군대를 보내 군사적으로 점령하려 하고 있다”고 가세했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18일 “미군은 아이티에서 치안유지 작전을 수행하지 않을 것이며 유엔 평화유지군과 아이티 정부를 지원하는 역할만 할 것”이라고 한발 뺐다.
▽각국의 원조 경쟁=미국이 전현직 대통령이 나서 1억 달러의 원조와 1만1000여 명의 병력, 항공모함, 병원선 파견 등 아이티 구호 총력전에 나서자 이에 뒤질세라 다른 나라들도 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13일 1차로 300만 유로를 구호금으로 지원한 EU는 18일 브뤼셀에서 긴급 장관회의를 열고 총 4억2000만 유로를 지원키로 결정했다. 당초 1000만 달러의 구호금을 제시한 영국도 이날 3200만 달러로 액수를 3배가량 높였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아이티의 부채 400만 유로를 탕감해주기로 했다. 유엔 아이티 안정화지원단(MINUSTAH)에 가장 많은 병력을 파견하고 있는 브라질은 향후 5년간 아이티에 군대를 주둔시켜 국가 재건을 돕겠다고 발표했다.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 중국도 이날 1300만 위안(약 190만 달러)어치의 구호품을 아이티에 전달했고 중남미 인접국인 쿠바도 10t의 의약품과 450명의 의료진을 파견했다.
영국의 데일리 메일은 “미국의 발 빠른 구호는 아이티에 쿠바 같은 나라가 생기거나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는 걸 방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며 “유럽 국가도 수많은 인도주의 봉사를 하고 있지만 EU는 미국처럼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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