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서울회의 그랜드비전 제시
“세금으로 구제된 거대 금융기관 도덕적 해이 심도있게 다루겠다”
- ‘비즈니스 서밋’ 개최 제안
“세계 유수의 기업인들 참여시켜 민간주도 투자-소비확산 토론”
다보스행 기차에서 대책회의 이명박 대통령이 28일(현지 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제40회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취리히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 수행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다보스=안철민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28일(현지 시간) 스위스의 휴양도시 다보스에서 11월 서울에서 개최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그랜드 비전을 내놓았다.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이 대통령은 이번 포럼에서 특별연설을 하는 4개국(한국 중국 캐나다 브라질) 정상 중 첫 번째로 연단에 올랐다.
이 대통령이 이날 연설에서 시종 강조한 것은 글로벌 불균형 해소 방안이었다. 신흥경제국과 개도국의 경우 외환보유액이 충분치 않아 외국 자본이 갑자기 빠져나가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들 나라가 경상수지 흑자를 낼 수 있도록 국제적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글로벌 금융안전망(Global Financial Safety Net)’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사공일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은 “흑자를 많이 내는 나라와 적자를 많이 내는 나라들의 균형을 맞추는 문제는 말은 쉽지만 나라마다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굉장히 까다롭다”면서 “(의장국인) 우리나라가 조정을 해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특별연설 후 같은 장소에서 열린 ‘글로벌 거버넌스’ 특별전체회의에서도 세계 경제에서 신흥경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국제사회의 틀이 취약한 상황을 지칭하는 ‘글로벌 갭’ 문제 해결과 관련해 G20이 글로벌 갭을 해소할 중요한 포럼으로 작동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거듭 역설했다.
이 대통령은 특별연설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최근 제기한 대규모 금융기관의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문제도 서울 회의의 주요 어젠다로 추가할 것임을 밝혔다. 거대 금융기관의 실패를 국민 세금으로 메우면서 발생한 도덕적 해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심도 있게 다루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연설 후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과의 일문일답에서 “현재 금융체제로 그냥 가기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 그러나 금융기관 개혁이 금융의 역할을 너무 소극적으로 만드는 것은 피해야 한다. 적절한 수준에서 시스템을 개혁하는 게 필요하다”면서 “선진국이 공히 금융이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고 (저) 개인적으로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입장이다. 건전하고 건강한 변화는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금융기관 종사자들이 수동적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변화의 안을 제시하는 게 정부가 주도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유수의 기업인들이 참여하는 ‘비즈니스 서밋’ 개최도 이 대통령이 이날 연설에서 제시한 중요한 메시지다. 그동안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급한 불을 끄는 차원에서 정부 주도로 G20 정상회의가 열렸지만 세계 경제가 회복되는 단계에선 역시 민간 부문의 투자나 소비 확산이 중요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캐나다 스티븐 하퍼 총리, 스위스 도리스 로이타르트 연방대통령, 스페인 호세 루이스 사파테로 총리, 요르단 압둘라 2세 국왕 등과 잇달아 양자회담을 갖고 정상외교를 펼쳤다. 이 대통령은 특히 압둘라 2세와의 회담에서 요르단 정부가 중점 추진하는 상업용 원전 건설과 홍해-사해 대수로 사업에 우리 기업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다보스 현지에서 전 세계 주요 인사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국의 밤에 참석했다.
다보스=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 각국 정상들 “은행이 투기해서 되겠나” 은행 CEO들 “과도한 규제땐 모두 패자” ▼
■ 금융규제 다보스 최대쟁점 부상
27일 스위스 휴양지 다보스에서 개막한 제40회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금융개혁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형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은 한목소리로 규제 강화에 반대한 반면 정치 지도자들과 일부 경제학자들은 강도 높은 금융개혁을 주문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기조연설을 통해 “은행가가 할 일은 투기가 아니라 신용위험을 분석하고 채무자의 상환능력을 평가하며 경제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업계가 과도한 이윤 추구와 보너스 지급을 지속하는 일을 더는 용인할 수 없다”며 “특히 일자리 및 부의 감소에 기여한 금융회사가 많은 돈을 벌었다면 이는 도덕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비관적 경제전망으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은행산업 규제에 관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제안은 궁극적으로 옳은 방향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비롯해 추가적인 조치들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헤지펀드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 ‘소로스 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은 은행의 대형화를 억제하려는 오바마 대통령의 계획을 적극 지지한다면서도 “아직 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강한 규제를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라고 시기 문제를 지적했다.
대형은행 CEO들은 금융산업에 대한 새 규제조치들이 경기회복을 지연시킬 것이라며 반발했다. 독일 도이체은행의 요제프 아커만 회장은 “각국 정부들이 시장을 과도하게 규제할 경우 우리는 모두 패자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영국의 스탠더드차터드 은행의 피터 샌즈 CEO는 “강해진 규제와 감독체제로 인해 이미 금융산업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말했고, 영국의 로이드 은행의 피터 레빈 회장은 “‘좋은’ 규제, ‘더 나은’ 규제로 가야지 ‘더 많은’ 규제로 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의 로버트 다이아몬드 CEO는 “은행의 규모가 작아지면 고용은 물론 세계무역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위안화 절상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중국의 환율정책도 도마에 올랐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무역 불균형 심화가 경기회복을 저해하고 있다”며 통화문제가 무역불균형의 중심에 있다고 우회적으로 중국의 통화정책을 비판했다. 소로스 회장은 “위안화 절상은 중국에도, 전 세계에도 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朱民) 중국 인민은행 부행장은 이에 대해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위안화가 존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이는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도움이 된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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