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미국 의사당에서 진행된 첫 국정연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사법부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주 (미국 사법부는) 100년에 걸쳐 지켜온 법정신을 뒤집고 외국기업을 포함한 특정이익을 위해 수문(floodgate)을 열어 버렸다”고 맹비난했다.
이는 연방대법원이 21일 기업이 특정후보를 편들기 위한 선거광고에 돈을 쓰지 못하도록 1947년 제정한 법조항에 대해 헌법이 규정한 ‘언론의 자유’에 어긋난다고 판결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맨 앞줄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던 대법관들은 당황했다. 특히 5 대 4로 결정된 이번 판결에서 기업의 선거광고 지원 제한 조항을 철회하자는 의견을 낸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앤서니 케네디, 앤터닌 스캘리아,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불쾌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중 얼리토 대법관은 아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는 (보통) 미국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민주 공화 양당 의원들에게 이 ‘(사법부의) 잘못’을 바로잡아 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되뇌기도 했다. 미 언론은 28일 일제히 얼리토 대법관이 한 말이 “사실이 아니야(Not true)”라고 전했다.
미 언론은 그의 혼잣말이 지난해 9월 공화당 조 윌슨 하원의원이 오바마 대통령의 보건의료개혁 연설 도중 한 “당신 거짓말 하고 있어(You lie)”라는 말을 연상케 했다고 덧붙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상원의원 재직 당시 얼리토 대법관 인준에 반대표를 던진 일이 있다.
미국 내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공개적인 사법부 비판이나 얼리토 대법관의 혼잣말 모두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은 것이라는 양비론이 일고 있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권력분립의 원칙을 무시한 것이며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법부를 매도한 셈이라며 내년도 국정연설을 보이콧하자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상원에서 가장 강성 보수성향으로 알려진 오린 해치 의원(공화·유타 주)은 “대통령이 무례(rude)했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빌 버턴 대변인은 “최고위 공직자라 해도 사석이나 공석에서 반대의견을 펼 수 있다는 점이 미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점”이라고 했다. 얼리토 대법관은 이 문제에 코멘트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2006년 물러난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은 “대법원의 지난주 결정은 법조계의 선거에도 자금경쟁을 촉발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사법부의 독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사법부 비난 대열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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