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볼커 룰(Volcker Rule)’은 옳은 금융개혁 방향이 아닙니다. 다보스에서 금융개혁에 대한 국제적인 컨센서스가 이뤄졌지만 합의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금융분야 석학으로 손꼽히는 배리 아이켄그린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교수(58·사진)는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제시한 금융개혁 접근방식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금융감독을 강화한다는 대전제는 “전적으로 옳다”면서도 초점이 잘못 맞춰졌다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폐막한 다보스포럼에 패널리스트로 참석한 뒤 2일(현지 시간) 학교로 돌아온 아이켄그린 교수에게 전화로 금융개혁, 중국과 글로벌 불균형, 한국경제 전망 등에 대해 들어봤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는 금융개혁이 단연 화두였는데 결말은 없는 것 같다.
“금융감독의 필요성에 대해 각국 지도자와 학자들 사이에 컨센서스가 이뤄진 것은 분명하다. 다만 얼마나 강화할지, 어떻게 어떤 규제를 강화할지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달랐다. 물론 은행가들은 금융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개혁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보나.
“자본건전성 규정이 훨씬 더 강화돼야 한다. 특히 대형 은행일수록 자기자본비율을 더 높여야 한다. 이와 함께 은행들이 과도하게 신용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유동성 규정도 강화해야 한다. 세 번째로, 상업은행 투자은행 헤지펀드 등 어떤 이름의 금융회사건 모두 감독의 틀 안으로 들어오도록 금융감독 범위를 넓혀야 한다. 마지막으로 금융회사의 임원 보수 규제를 손질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볼커 룰’에 동의하는가.
“은행의 덩치를 제한하고 상업은행들이 위험한 자기자본 투자를 규제하자는 것인데 접근방식이 적절치 않다. 금융회사의 사이즈보다는 금융감독의 범위와 질이 문제다. 나는 그동안 오바마 정부 관계자들과 금융감독 강화와 관련된 의견을 많이 교환했는데 ‘볼커 룰’은 의외의 발표였다. 다보스에서도 유럽의 정책 당국자들이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금융개혁에 대해 의지가 강력하다는 신호를 시장에 분명하게 보냈다는 점이다.”
―이른 시일 안에 금융개혁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영어 격언에 ‘문제는 각론이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는 말이 있다. 총론에는 합의했지만 각론이 어려운 것이다. 미국만 해도 의회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결론이 나도 국가 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
―다보스포럼에서 글로벌 불균형 문제도 많이 논의됐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글로벌 불균형의 시정은 매우 느리게 진행될 것이다. 현재 중국의 저축률이 45% 수준에 이른다. 30∼35% 수준으로 낮아져야 한다. 중국 인구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2015년 이후에나 가능하다. 노인들은 젊은층보다 저축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로벌 불균형 문제가 시정되려면 향후 10년 정도는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는 불균형 문제가 계속 불거질 것이고 보호주의도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다보스에서 중국이 어느 때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것 같다.
“중국은 이전보다 훨씬 더 자신감에 찬 모습이었다. 서방국가들의 훈계를 더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중국이 명심해야 할 것은 대국이 된 만큼 글로벌 시스템의 책임도 커졌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이슈에 대해 긍정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예컨대 균형 성장 부분에서도 ‘위안화 평가절상을 원하지 않는다’고만 할 게 아니라 ‘그보다 이런 해결책을 쓰겠다’는 식으로 나와야 한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연임안이 힘겹게 통과됐다.
“반대표가 많았지만 어쨌든 인준안은 통과됐다. 민주당 의원들 가운데 반대표를 던진 사람들은 대부분 중간선거에 나가는 의원들이다. 이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자신들의 선거구 유권자들의 심정을 헤아린다는 점을 보여줘야 했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더딘 경기회복과 높은 실업률에 분개하고 있다.”
―FRB의 독립성이 위협받지 않을까.
“FRB는 분명 의회로부터 많은 압력을 받고 있다. 지난해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좀 더 투명하게 정책을 운영했어야 했다. FRB가 하는 일은 국익과 관련된 것이고 국민은 이를 알아야 한다.”
―미국 경제 전망과 버냉키 의장의 향후 역할은….
“당분간 미국 경제가 약한 모습을 보일 것이므로 저금리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 다만 인플레이션 조짐이 있을 때 당장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확신을 시장에 심어줘야 한다. 또 당장은 실업률이 문제이고 내년 이후에는 재정적자가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올해 세계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매우 느린 성장세를 보일 것이다. 미국의 4분기 성장률은 기업들이 재고를 늘렸기 때문이므로 진정한 성장으로 보기 어렵다. 유럽은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일본은 디플레이션 문제로 계속 어려운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글로벌 경제가 더딘 성장세를 보이는 만큼 한국 경제도 좋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중국 수출만으로는 안 될 것이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아이켄그린 교수는 금융시스템과 대공황에 정통한 금융 분야의 석학. 1979년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7년 이후 줄곧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로 재직해왔다. 1997∼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의 선임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으며 경제 현안에 대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해 왔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통화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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