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지진 참사 나흘째… 무법천지 ‘쓰나미’
굶주린 군중이 폭도로… 군경 발포로 1명 사망
와인산업 큰 타격… 구리광산은 별 피해 없어
지진 참사 나흘째인 2일(현지 시간) 칠레 제2도시 콘셉시온은 구호물자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가운데 굶주림에 성난 군중이 약탈과 방화를 일삼는 무법천지로 변해가고 있다고 AFP통신 등 주요 외신이 전했다.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국민들의 절박한 상황은 잘 알고 있지만 약탈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범죄 행위”라며 국민들에게 자제를 호소했다.
칠레 정부는 지진 및 쓰나미 피해 지역에 경찰 외에 1만4000명의 군 병력을 추가 배치하기로 했다. 이번 지진으로 칠레의 와인산업도 큰 타격을 입었으나, 다행히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의 구리 광산은 별다른 피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 “군경 발포로 1명 사살”
이날까지 칠레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사망자는 723명. 칠레 정부는 약탈을 막기 위한 군경의 발포도 허용했다. 파트리시오 로센데 내무차관은 “경찰이 약탈을 막는 과정에서 주민 1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고 밝혔다. 이날부터 칠레 정부는 애초 오전 8시까지이던 통행금지를 낮 12시까지 연장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콘셉시온에서와 같은 약탈과 폭력 사태는 칠레 남부의 지진 피해 지역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 소방서 병원도 약탈
정부가 치안 확보에 주력하면서 주민들의 불만도 쌓이고 있다. 2일 오전 콘셉시온의 슈퍼마켓을 찾은 주민들은 “(슈퍼마켓에) 물과 음식, 기저귀가 가득한데 경찰이 들여보내주지 않고 있다”며 군경을 성토했다. 경찰이 기저귀를 얻으려 슈퍼마켓으로 향하던 주민들에게 최루탄을 발포하자 주민 중 일부는 홧김에 불을 질렀다. 이 때문에 콘셉시온의 슈퍼마켓과 대형 건물에서는 시뻘건 불길과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불난 건물이 무너지면서 생존자 구조에 나섰던 소방대원 일부가 다치기도 했다.
또 주민 중 일부는 슈퍼마켓 진입이 가로막히자 소방서와 병원까지 약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이메 하라 콘셉시온 소방서장은 “주민들에게 먹을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병원과 진료소까지 털어 가면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주민들을 돕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구호품 지원도 쉽지 않다. 칠레 당국은 구호품을 싣고 가던 경비행기 한 대가 추락해 탑승객 6명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칠레 정부는 이날 뒤늦게 식량난과 약탈 사태 해결을 위해 콘셉시온의 대형 슈퍼마켓에 있는 식량을 모두 구입해 무상 배급하기로 했다.
○ 대통령 당선자 “예상보다 심각”
11일 대통령 취임을 앞둔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 당선자는 2일 주요 지진 피해 지역을 시찰한 뒤 “예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며 “무너진 건물에 들어선 순간 구조대원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AFP통신은 콘셉시온의 15층 아파트가 무너진 자리에선 구조대원들이 열 감지 센서와 수색용 탐지견, 특수카메라를 동원해 생존자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후안 카를로스 수베르카소 소방팀장은 “시계를 수리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생존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콘셉시온보다 진원지에서 가까운 태평양 연안의 작은 어촌 콘스티투시온에서도 비극이 벌어졌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사망자만 300여 명으로 알려진 이 마을에 대해 “마을 체육관 안의 농구장은 시체 운반용 부대로 가득했다”며 “그 옆에는 죽음의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피투성이 할머니가 하얀 천에 덮여 있었다”고 참상을 전했다.
○ 와인산업 직격탄
칠레 와인산업도 큰 타격을 입었다. AP통신은 2일 “강진이 주요 와인 산지와 와인 운송망을 파괴해 칠레 최대의 와인 생산업체인 콘차이토로가 적어도 1주일 이상 와인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콘차이토로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고가의 유명 와인 ‘알마비바’를 생산하는 세계적인 와인업체. 칠레 와인산업의 피해는 적어도 약 40억 달러(약 4조6000억 원)로 추정된다.
세계 구리 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의 구리 광산은 별다른 피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급등할 것으로 예상됐던 국제시장 구리 가격도 1일 5% 반짝 상승했다가 내림세로 돌아섰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한국 200만달러 구호품 긴급지원 ‘흔들림 없는’ 지구촌 구호공조 美-유엔 등 재건팀 잇달아 급파▼ 1960년 이래 최대 지진 참사를 당한 칠레를 돕기 위해 국제사회가 온정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정부는 2일 칠레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200만 달러(약 23억 원) 규모의 구호품을 긴급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정부 당국자는 “칠레 정부가 요청한 텐트 발전기 정수제 등 200만 달러 상당의 구호품을 지원한 뒤 피해 규모와 국제사회의 지원 동향을 보면서 추가 지원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미를 순방하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칠레 방문길에 위성전화 20대와 통신 기술자를 대동했다. 지진 피해가 큰 지역은 통신이 두절돼 구조·구호 활동에 위성전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클린턴 장관은 칠레 산티아고 공항에서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 및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 당선자와 만나 향후 원조 방안을 논의했다.
유엔도 위성전화 45대를 칠레 정부에 전달할 계획이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식량 30t을 보내기로 했다. 유엔 측은 칠레 정부가 임시다리 설치에 필요한 물자와 야전병원 위성전화 발전기 등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은 300만 유로의 긴급 원조를 약속했다. 이는 EU가 정한 예산 범위 내에서 최대 규모다.
호주 정부는 휴대용 발전기와 재건에 필요한 원조를 합쳐 모두 45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칠레와 5000km의 국경을 접한 아르헨티나는 의료진 54명, 정수시스템, 발전기와 식량 1.8t, 생수 50만 L를 보내기로 했다. 브라질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은 1일 외국 수반으로는 최초로 칠레를 찾아 야전병원 및 수색·구조팀 지원을 약속했다. 볼리비아도 구호품 60t 분량을 보내기로 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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