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해커에 일자리? 러 ‘실리콘밸리’ 건설사업 발상부터 ‘非혁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3일 03시 00분


러시아 경찰은 올해 초 40세 해커를 체포했다. 해킹을 통해 모스크바 시내 광고판에 포르노 영상을 띄운 혐의였다. 체첸공화국의 다른 사람 계정까지 도용한 치밀한 수법이었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해 경찰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는 일거리가 없는 컴퓨터 전문가가 늘어났다. 일부는 외국으로 기술개발을 위해 떠났고 나머지는 단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해킹을 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넷판은 1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이런 비생산적인 해킹 문화를 최첨단 기술에 정통한 이미지로 바꾸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중 하나가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추진하는 러시아판 실리콘밸리 사업이다.

2월 공개된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모스크바 외곽이나 블라디보스토크 등 태평양 연안 항구 도시에 최첨단 건축물을 짓고 러시아 천재들을 모아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창의적인 생각을 끌어들이면 오일과 가스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도 깨질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 사업을 주도적으로 담당하는 사람은 크렘린 행정실 제1부실장인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 1월에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방문해 이틀간 혁신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2주 전에는 이베이 트위터 시스코시스템스 임원들을 모스크바로 초청했다. 이 자리에는 마이크로블로깅 서비스 ‘트위터’ 애용자로 알려진 할리우드 배우 애슈턴 커처도 동행했다. 민간 사절단이었던 커처는 방문 직후 트위터에 “러시아는 자신들의 실리콘밸리를 짓고 있다. 그들은 도움을 원한다”라며 “다시 지을 순 있겠지만 얼마나 혁신적일 수 있을까?”라는 글을 남겼다.

커처의 물음처럼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타임은 크렘린 내에 변화를 꾀하는 신세대의 야망과 통제하려는 구세대의 욕망이 상충하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실리콘밸리 기록보관소를 담당하는 사학자 레슬리 베를린은 “정부와 대기업이 혁신 장려를 위해 지원은 하되 관리는 하지 않았던 미국과 현재 러시아의 방식은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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