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방어(MD) 체제 참여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이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이 주도하는 MD 체제에 한국이 동참해 주길 원하지만 한국은 “실익이 없다”며 미국의 ‘구애’를 계속 뿌리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달 한국을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MD 체제에 참여하는 데 관심을 표명한 국가로 분류했다. 이와 관련한 실무협상이 시작됐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에 따른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미국의 요청에 따라 MD 참여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한 것은 사실이지만 MD 참여가 한국에 아무런 실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참여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마이클 시퍼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가 5일 동아일보 기고문에서 ‘맞춤형 지역 MD’를 언급한 것도 한미 간 줄다리기의 연장선에서 보는 시각이 많다. 특히 ‘맞춤형 지역 MD’ 체제는 그동안 한국 정부가 MD 체제 참여 반대 이유로 삼았던 ‘참여 무용론’을 설득하기 위한 대안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정부는 “우리에게 시급한 위협은 북한의 장거리미사일이 아닌 장사정포와 스커드 등 중·단거리 미사일이기 때문에 장거리미사일을 염두에 둔 미국의 MD 체제 참여는 실익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군 관계자는 “미국이 한국의 주장을 받아들여 장거리미사일이 아닌 중·단거리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맞춤형 지역 MD’를 구축할 테니 이번에는 동참해 달라는 메시지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으로부터 ‘맞춤형 지역 MD’에 참여해 달라는 제안을 공식적으로 받은 적이 없다”며 “실익이 없는 MD 체제 참여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미국의 요청을 끝까지 뿌리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주도하는 MD 체제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지역 MD’ 체제에는 참여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지난달 국방부 고위 관계자가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지역 단위 MD 체제에 참여하는 방안이라면 미국과 충분히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패트리엇요격미사일을 중심으로 한 단거리미사일 방어용 ‘한국형 MD 체제’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앞으로 미국과 협력하여 중거리미사일 방어를 위해 X밴드 레이더를 설치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지역 MD 체제는 일본이 주도하고 한국은 레이더기지만 제공할 경우 실익도 없이 중국의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 ‘맞춤형 지역MD’ 뭘 의미할까 ICBM보다 근접미사일 대비 정찰위성 등 美방어체제 연동
마이클 시퍼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가 언급한 ‘맞춤형 지역 미사일방어(MD)’ 체제는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 같은 장거리미사일보다는 중·단거리미사일 방어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과거 국가미사일방어(NMD)와 전역미사일방어(TMD)로 나뉘어 있던 MD 체제 가운데 TMD와 유사한 체제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일반적인 MD 체계의 구성은 세 단계로 나뉜다. 먼저 정찰위성(SBIRS)과 레이더로 적국의 미사일 발사를 감지한 뒤 대기권에 진입하는 미사일을 향해 항공기에서 레이저를 발사하거나 이지스함에서 스탠더드미사일(SM-3)을 발사해 1차 요격을 한다. 이때 적국 인근에 설치된 X밴드 레이더가 미사일을 추적해 위치 방향 속도 등 각종 정보를 제공한다. 1차 요격이 실패하면 탄도미사일이 대기권을 벗어났을 때 고고도방어체계(THADD) 미사일로 2차 요격한다. 이마저 실패하면 패트리엇요격미사일(PAC-3)로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미사일을 요격한다.
한국 정부는 SM-3나 PAC-3보다 한 단계 아래인 SM-2와 PAC-2를 중심으로 ‘한국형 MD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지역 MD’ 체제에 참여할 경우 한국은 SM-3와 PAC-3를 도입해 중·단거리미사일 방어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이 PAC-3나 SM-3를 도입해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찰위성과 X밴드 레이더 등 감시, 정찰체계를 먼저 구축하거나 미국 측 자산과 연동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지역 MD’ 체제 참여는 감시, 정찰체계 구축에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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