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돈’ 민심 등지고… ‘대미 갈등’ 불안 키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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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6일 03시 00분


■ 지지율 71%→36%… ‘정권교체 열망’ 왜 돌변했나

하토야마-오자와 불법자금 ‘금권정치 해소’ 기대감 배신
총리 ‘후텐마 이전’ 오락가락…美와 척지고 리더십 상처
작년 경기 선진국 최악수준…‘파트너’ 사민당과도 엇박자


일본 민주당 정권이 16일로 출범 6개월을 맞았다. 자민당 장기집권에 식상한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탄생했지만 집권 6개월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관료개혁과 예산절감 등 일부 정책은 긍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정치자금 문제와 미국과의 갈등, 리더십 부족 등 부정적 측면이 두드러졌다. 지지율은 줄곧 곤두박질쳤다. 신생 정권의 경험 부족으로 인한 과도기인지, 능력 부족으로 인한 혼돈인지는 향후 민주당 정권이 난제를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달렸다.

①정권 투톱 도덕성 흠집

새 정권이 허니문을 즐길 여가도 없이 냉담한 여론에 직면한 가장 큰 이유는 쌍두마차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의 돈 문제 때문이다. 국민이 민주당의 경험부족을 알면서도 정권을 맡긴 것은 자민당 정권의 금권정치에 신물이 난 측면이 짙었다.

그런데 정권 출범 2개월쯤 지난 작년 11월경 하토야마 총리가 재벌 딸인 모친으로부터 거액의 불법 정치헌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부각되면서 정권이 궁지에 몰렸다. 회계담당 전 비서는 기소됐고 총리는 뒤늦게 5억여 엔의 탈루세금을 납부하고 대국민사죄를 했다. 오자와 간사장도 올해 초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 그의 비서 출신 중의원 의원 등 3명이 기소됐다. 여론은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등 싸늘하다.

민주당 정권은 과거 자민당 정권과 다른 게 뭐냐는 혹독한 비판에 직면했다. 투톱의 힘이 급격히 빠지면서 정권은 중심을 잃었다.

②‘후텐마 이전’ 리더십 실패

하토야마 총리는 정국 전면에 제대로 나서지도 못하고 리더십 부족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초반에는 스타 각료들이 전면에 나섰다. 간 나오토(菅直人) 부총리 등은 100년 이상 일본을 사실상 지배해 온 관료사회 개혁에 칼을 빼들었다. 사무차관회의를 전격 폐지했으며 낙하산 인사가 도마에 올랐다.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국토교통상은 얀바 댐 등 초대형 국책사업을 중단시키는 등 획기적인 예산절감에 나섰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은 과거 자민당 정부와 미국 간의 밀약을 전면 조사했다. 국민들이 정권교체를 실감하면서 내각 지지율은 70% 안팎의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그러나 개혁의 빛을 바래게 한 것은 집권 1개월 만에 최대 현안으로 등장한 후텐마(普天間) 미군비행장 이전 문제였다. 하토야마 총리는 미국과 갈등을 빚었고 오락가락 발언으로 리더십에 결정적인 허점을 드러냈다. 총리와 각료들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등 하토야마 리더십은 정권 내부에서도 흔들렸다.

총리 리더십이 흔들리자 12월에는 막후권력을 행사하던 오자와 간사장이 전면에 등장했다. 정부 예산안을 직접 조정하고 후텐마 문제에도 적극 개입했다. 600명 규모의 방중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해 존재감을 과시한 것도 이 무렵이다. ‘상왕정치’ ‘오자와 독재’라는 비판과 함께 “그래도 오자와가 나서니 일이 된다”는 평가가 나오던 연말연초 정치자금 의혹이 터지면서 그 또한 정국 장악력이 급락했다.

③첩첩산중 경제

경제라도 살아나면 정권이 한숨을 돌릴 수 있겠지만 올해 1월까지 11개월째 소비자물가가 하락하는 등 디플레이션이 심각하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3%, 국가채무는 GDP 대비 174%로 나란히 선진국 최악의 수준이다.

댐과 도로 등 각종 사업예산을 아동수당 등 복지예산으로 돌린 것도 당장은 건설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았다. 자칫 ‘성장 없는 복지’로 끝없이 추락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④연립정권 ‘삐걱’

연립 파트너인 사민당은 후텐마 문제에서, 국민신당은 영주외국인 지방참정권 문제 등에서 민주당과 삐걱거렸다. 양당은 참의원에서의 캐스팅보트를 무기로 주요 정책에서 사실상 비토권을 행사해 왔다.

연립정권의 내부 엇박자를 비집고 공명당이 최근 민주당에 급속히 접근 중이다. 양당은 아동수당과 고교무상화 정책 등에서 정책협의를 가졌고 사민당과 국민신당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7월 참의원 선거 후 민주당과 공명당이 손잡을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정권 출범 1주년쯤 대형 정계개편이 예고된 셈이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野 자민당도 혼돈… 총리동생 “탈당”▼
중진들 내달말 신당 창당 가능성

민주당 정권의 추락이 곧 자민당의 부활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1955년 창당 이래 사실상 처음으로 권력에서 멀어진 자민당은 6개월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형국이다.

자민당은 지난해 9월 야당으로 전락한 직후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총재 체제를 출범시켰지만 그 또한 리더십 부재로 당내 비판에 직면했다. 그는 전투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당 지지율은 10%대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7월 참의원 선거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자민당은 분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요사노 가오루(與謝野馨) 전 재무상,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전 후생노동상, 하토야마 총리의 친동생 하토야마 구니오(鳩山邦夫) 전 총무상 등 중진의원들은 신당 창당에 의욕적이다.

하토야마 구니오 전 총무상은 15일 탈당계를 제출한 후 “마스조에, 요사노 씨 등이 함께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며 다음 달 말 창당을 시사했다. 마스조에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로 바람직한 인물 1위’로 떠오른 스타 정치인이고 하토야마 구니오는 창당 자금을 댈 수 있어 이들이 결합하면 신당은 조기에 현실화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자민당의 자금줄이었던 경단련이 최근 정치자금 모금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당의 3대 지원조직 중 하나인 의사협회도 당의 자금 요청을 거부함으로써 자민당은 사방으로 돈줄이 막힌 형국이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진보-보수 잡탕연립이 혼란 불러”
히라이와 슌지 교수


“하토야마 정권에 대한 6개월 평가가 불가능할 정도로 구체적 성과가 없었다.”

히라이와 슌지(平岩俊司) 시즈오카(靜岡) 현립대 조교수(정치학·사진)는 “일본 국민에게 최근 6개월은 혼란과 실망의 연속이었다”며 이렇게 평가했다. 히라이와 교수는 “전후 사실상 첫 정권교체에 국민이 많은 기대를 걸었던 만큼 실망도 컸다”고 지적했다.

정권 출범 초기에는 처음 겪는 정권교체이기 때문에 다소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온정적인 평가가 계속됐지만 거듭된 불법 정치자금 문제와 우유부단한 정권 운영이 민심이반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는 하토야마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정책지향이 서로 다른 정당의 정치적 연립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내부도 스펙트럼이 다양하지만 진보적인 사회민주당과 보수적인 국민신당까지 연합함으로써 혼란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또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확실히 장악하지 못하고 사안마다 횡보를 보여온 하토야마 총리의 리더십도 국민이 불안감을 느끼는 원인으로 지적됐다.

히라이와 교수는 “북핵 문제처럼 국제사회의 견해와 일본 국민정서 사이에 거리감이 있는 사안에 대해 현 정부가 조정능력이 있는지 의문스럽다”며 “정권에 대한 신뢰를 조속히 되찾지 못하면 7월 있을 참의원 선거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정건전성 위해 증세 설득해야”

요시다 야스히코 교수


“세계 경기 침체로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글로벌 경기가 풀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요시다 야스히코(吉田安彦) 오사카(大阪)경제법과대 교수(사진)는 하토야마 정권의 경제 정책에 대해 “방향은 맞지만 세계 경기여건이 따라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정권은 중학생 이하 자녀에게 매월 2만6000엔(약 32만5000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것과 고교수업료 무상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불확실한 미래로 국민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아 정부가 직접 재정을 풀어 구매 여유를 제공해야 한다는 논리다.

요시다 교수는 “소비부진과 가격하락이 반복되는 디플레이션 소용돌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내수 진작에 무게를 둔 것은 적절했다”며 “올해 상반기에 끝나는 친환경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등 환경친화 상품에 대한 정부 보조가 좀 더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요시다 교수는 “일본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한 소비세 증세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선진국의 소비세가 20∼25%에 이르지만 일본은 5%로 턱없이 낮다는 것. 그는 “7월 참의원 선거가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사회복지와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해 증세가 불가피함을 국민에게 적극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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