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짜리 알약 없어 죽음 내몰린 아이들… 20% 5세前 숨져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7일 03시 00분


세이브더칠드런과 ‘가난의 땅’ 阿말리를 가다말라리아-설사-폐렴 창궐가난 탓에 아연보충제 못구해일교차 커 저체온증 치명적한국서 보온모자 9만개 보내

생명 구하는 털모자쌍둥이 아기들이 9일 오후 4시 아프리카 말리 요로소 마을의 보건센터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보내온 털모자는 아기들을 저체온증으로부터 보호한다.
생명 구하는 털모자
쌍둥이 아기들이 9일 오후 4시 아프리카 말리 요로소 마을의 보건센터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보내온 털모자는 아기들을 저체온증으로부터 보호한다.
《아프리카 말리 두나 마을에 사는 세 살배기 라마투 코나테는 지난달 설사병을 심하게 앓았다. 라마투는 두 살이 되도록 엄마 젖과 물밖에는 먹은 것이 없었다. 세 살이 되고서야 라마투는 두 번 기장과 옥수수를 빻은 가루로 만든 죽을 먹었다. 그것도 하루 두 끼뿐이었다. 한창 자라는 나이, 영양이 부실한 상태에서 설사병까지 걸리자 라마투는 눈도 스스로 뜨지 못했다. 먼지투성이 흙바닥에 퍼져 누운 라마투는 나흘을 내리 설사하더니 몸을 축 늘어뜨린 채 부르르 떨어댔다. 아이의 숨소리가 거칠어지자 라마투의 어머니 마리앙 코나테 씨(25)는 아이를 들쳐 업고 마을에서 30여 km 떨어진 모성보건센터를 찾았다. 간호사에게서 한국 돈으로 500원도 되지 않는 아연 성분의 알약을 받았다. 라마투는 곧 기운을 차리고 일어났다.》
아프리카 서북부 가난한 나라 말리에서는 태어나는 아이 5명 중 1명이 다섯 살 생일을 맞지 못한다. 평화로운 말리에는 전쟁도, 갑작스러운 자연재해도 없지만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은 1000명당 194명으로 세계 7위다. 말리 아동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말라리아, 설사, 폐렴 등 3대 질병이다. 5세 미만 아동 사망자의 60% 이상이 이 세 가지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다. 이들에게 삶과 죽음을 가르는 벽은 그리 높지 않다. 단돈 500원짜리 아연 알약 하나로도 나을 수 있는 간단한 질병들이다. 하지만 말리의 아이들은 500원짜리 알약 때문에 죽음에 내몰리고 있다. 기자는 우물 파주기와 신생아 저체온증 보호용 털모자 전달을 위해 말리를 방문한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들과 동행했다.

○ 분뇨 쌓인 더러운 우물


10일 찾은 말리 남쪽 시카소 지역의 두나 마을. 친절한 말리 사람들에게는 더운 날씨에 땀 흘리고 찾아온 손님에게 물을 대접하는 전통이 있다. 기자에게도 우물에서 막 떠온 물을 한 바가지 내놓았다. 뿌연 물에는 흙먼지가 떠다니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말리 대부분의 지역에는 수도시설이 돼 있지 않아 전통적인 방식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쓸 수밖에 없다. 되는 대로 땅을 파 만든 구덩이가 이들이 쓰는 우물이다. 우물 바로 옆에는 돼지우리가 보였다. 새끼 돼지 한 마리가 똥을 지르면서 우물가에 고인 물을 할짝거렸다. 우물 주변에 그득한 분뇨에는 엄지손톱만 한 파리가 들끓었다. 설사 등 말리 아동들에게 치명적인 수인성 질병은 더러운 우물에서 비롯된다. 라마투도 더러운 우물물을 마시고 설사병에 걸렸다.

말리 시카소 지역 두나 마을에 있는 오래된 우물에서 한 여인이 물을 긷고 있다. 땅바닥에 구덩이만 파놓은 우물은 비가 쏟아지는 우기에는 하수도나 다름없는 곳이 된다.
말리 시카소 지역 두나 마을에 있는 오래된 우물에서 한 여인이 물을 긷고 있다. 땅바닥에 구덩이만 파놓은 우물은 비가 쏟아지는 우기에는 하수도나 다름없는 곳이 된다.
두나 마을 중심에는 새 우물이 두 개 생겼다. 아동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말리 시카소 지역 곳곳에 깨끗한 우물을 만들어주고 있다. 기존에 있던 우물 안을 깨끗이 소독한 뒤 시멘트로 우물 벽을 새로 만들고 뚜껑을 달아 쓸 수 있게 했다.

○ 임신부 말라리아 발병률 59.1%

말라리아는 말리의 고질적인 문제다. 이곳 사람들은 감기처럼 1년에도 몇 차례씩 말라리아모기에게 물리지만 면역력이 있는 어른들은 대부분 병을 이겨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치명적이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하룻밤 사이에도 말라리아모기에게 물려 짧은 생을 마치는 경우가 많다. 5세 미만 아동의 18%가 매년 말라리아에 걸린다. 임신부에게는 더욱 심각하다. 2008년 임신부의 59.1%가 말라리아에 걸렸다. 임신부에게도 아기에게도 위험하다.

요로소 마을에 사는 카트린 자라 양(14)은 10일 오후 11시 요로소 보건센터에서 첫아이를 낳았다. 보통 이곳 주민들은 집에서 어머니나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낳지만 요로소 중심가에 깨끗한 보건센터가 생기면서 이곳을 찾는 임신부도 늘어났다. 이곳에서 임신부들은 임신 중 말라리아를 예방하는 약을 무료로 처방받는다. 아이를 낳은 뒤에도 신생아와 지친 산모를 말라리아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모기장 안에서 휴식을 취하게 한다.

○ 뜨개모자로 저체온증 이겨내

말리는 날씨가 한창 더운 4월에는 기온이 50도에 이를 정도로 더운 나라지만 밤이면 갑작스레 추워지는 날씨 때문에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아기도 많다. 어린아이들은 대부분이 기침을 해댄다. 저체온증과 잦은 감기는 폐렴 등 치명적인 질병으로 이어진다. 말리 아이들을 폐렴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작은 털모자 한 개면 충분하다. 털모자 한 개는 체온을 2도 정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인큐베이터 같은 역할을 한다.

올해 한국에서만 후원자 4만여 명이 세이브더칠드런의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에 참여했다. 이들이 손수 뜬 모자 9만 개가 말리 아이들의 작은 머리에 씌워졌다. 시카소 지역 시모나 마을에 사는 마리암 사누 씨(25·여)의 한 살배기 쌍둥이 아이들도 지난해 태어나 첫 선물로 한국에서 보내준 모자를 받았다. 어느덧 모자가 작을 정도로 자란 아기들은 모자 덕분에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두나 마을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의 꿈은 ‘피부가 하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당신이나 백인처럼 피부가 하얀 사람들은 잘살지 않느냐. 그래서 우리도 피부가 하얗게 돼 잘살고 싶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교육받을 기회, 미래를 꿈꿀 선택권조차 주어지지 않는 말리 아이들에게 500원은 미래다.

시카소(말리)=글·사진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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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02-6900-4411, 2
▲기획영상=검은 대륙에 심은 2만원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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