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했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폭우가 쏟아지던 태국 방콕은 또다시 ‘혈액 투척’이 벌어지며 핏빛으로 얼룩졌다. 그러나 시위대 규모는 눈에 띄게 줄고 있었다.
태국 반정부 시위대는 일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16일에 이어 17일에도 혈액을 비닐봉지 등에 담아 던지는 시위를 이어갔다. 전날 정부청사와 민주당사에서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 자택으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다.
16일 방콕의 중심가 랏차담는에서 밤을 새운 시위대는 17일 오전 10시부터 총리 자택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트럭과 오토바이를 타고 시끌벅적한 경적소리를 울리는 시위대가 도로를 점령해 일대는 극심한 교통 체증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전 11시 15분경 총리 사저 앞에서 경찰과 대치한 시위대는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곧 시위대에 섞여 있던 ‘독재저항민주주의연합전선(UDD·일명 레드셔츠)’의 지도자 나타웃 사이쿠아 씨가 앞으로 나서 경찰과 얘기를 나눴다. 전날에 이어 시위대와 경찰이 얼마만큼 혈액을 던질지 미리 협상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협상이 채 끝나기 전에 시위대 일부가 총리 자택으로 피가 담긴 비닐봉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지도부의 만류도 소용없었다. 비를 뚫고 날아간 비닐봉지는 지붕에 부딪치며 붉은 핏물을 흩뿌렸다. 시위 참가자 사온 폰칵손 씨는 “아피싯 총리는 모습을 드러내고 국민의 소리를 들어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총리는 현재 방콕 외곽의 육군본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쟁 대상이 자리를 비운 시위는 갈수록 힘이 빠지는 모습이었다. 태국 경찰당국은 “16일 10만여 명이던 시위대가 상당수 빠져나가 현재 2만 명이 채 안 된다”고 발표했다. 시위가 장기화되며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참가자들의 이탈이 늘었다. 시위 지도부 역시 시민의 관심을 되찾을 수 있는 새로운 투쟁 방식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혈액 투척 외엔 별다른 충돌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면서 시위 장소를 벗어난 방콕 거리는 대체로 평온한 모습이었다. 총리 자택 시위 뒤 인근 미국과 영국 대사관 앞에서 벌어진 피켓 시위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안보담당인 수텝 트악수반 부총리는 “시위가 잦아들긴 했지만 방콕과 지방에서 잇따라 폭탄사고가 발생하는 등 불안요소는 여전한 만큼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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