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일(현지 시간) 아일랜드 성직자의 아동 성추행 파문에 대해 사죄하고 조사를 지시했다. 이번 조치는 아일랜드와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에서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이후 가장 강도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교황은 이날 아일랜드 신자들에게 보내는 8쪽 분량의 사목서신을 통해 “교회가 범한 잘못된 행동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며 “교회를 용서하고 화해하려는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신자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수치와 회한(shame and remorse)’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울러 아동 성추행 죄를 아직도 숨기고 있는 성직자들을 겨냥해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교황의 이번 사목서신은 수십 년 전까지 소급되는 아일랜드 교회의 아동 성추행이 공개된 뒤 바티칸 측이 내놓은 첫 공식 반응이다. 하지만 교황의 이례적인 사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된 성직자 징계나 성추행 방지를 위한 바티칸 차원의 대책이 빠져 있어 피해자들의 분노를 잠재우는 데 실패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은 지적했다.
또 아동 성추행을 감추기 위해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아일랜드 가톨릭교회 수장인 숀 브래디 추기경이 “교황이 요청하면 물러나겠다”고 했음에도 이날 교황은 그의 사임을 요구하지 않았다. 가톨릭교회와 관련한 성추행 소송 청구인이 독일에서만 300명이 넘는 등 최근 몇 주간 성추행 파문이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위스 등 여러 유럽 국가로 번지고 있으나 교황이 사과 대상을 아일랜드 피해자로만 국한했다는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 교황 자신도 문제 성직자를 비호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AP통신은 교황이 1977∼1982년 독일 뮌헨 대주교 시절 성추행과 관련된 성직자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인사이동만 하도록 허용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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