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일본이 주장해 온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라는 용어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데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학자들은 또 조선시대 한반도를 침략했던 왜구에 조선인이 포함됐다는 일본 측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양국 학자들은 한일 강제병합조약의 합법성과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징용·공출 여부 등 양국 과거사의 핵심 쟁점을 둘러싸고 정면으로 의견대립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위원장 조광)는 이 같은 내용의 제2기 위원회 최종 연구결과를 23일 발표할 예정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22일 “한일 역사학자들은 3개 분과(고대사, 중세사, 근·현대사)에서 각국이 선택한 24개 주제, 모두 48개 주제에 대한 공동연구 작업을 벌인 결과 일부 유익한 결과를 도출했다”고 말했다.
고대사를 다룬 1분과에서는 일본이 4∼6세기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일본 교과서 내용 중 야마토(大和) 정권 세력이 한반도 남부에서 활동했을 수는 있지만 ‘임나일본부’라는 공식 본부를 설치해 지배했다고 볼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관계자들이 전했다.
▼강제병합 등 근현대사 해석은 극과 극▼ 韓 ‘징용 개인청구권’ 주장에 日 “이미 해결된 문제” 맞서 임진왜란-통신사 문제도 이견…日 고대사 인식전환은 의미
양국 역사학자들의 이 같은 의견 일치는 그동안 한국 관련 고대사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통념과 역사 인식에 상당한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중세사를 다룬 2분과에서는 조선을 침략했던 왜구에 조선인 또는 제주도 해민(海民)이 포함됐다는 일본 교과서의 기술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왜구는 ‘쓰시마 섬과 일본 본토 해안에 거주하는 일본인 중심의 집단’이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다만 그 외 주제인 임진왜란, 왜관, 통신사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는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임진왜란의 원인 분석에 대해 한국 측은 ‘기본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침략전쟁’이라고 강조했지만, 일본 측은 ‘명나라에 침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조선을 침략했다’는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했다”고 전했다.
양국 학자 간의 의견 충돌이 가장 많았던 부분은 3분과의 근·현대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일본 측은 강제병합, 군위안부, 식민지근대화론, 샌프란시스코조약, 한일회담 등의 문제에서 별다른 진전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본 측은 특히 한일 강제병합조약이 국제법적으로 합법적이었으며 조선에 대한 식민지화가 진행됐음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은 이번 조약이 일본의 강압과 사술(邪術)에 의해 강요된 것인 만큼 해당 조약은 원인무효임은 물론이고 이에 따른 식민 지배가 부당했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은 또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문제와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징용·강제공출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한 이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측은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문제에 대해 “일한 기본조약 체결을 통해 청구권 문제는 해결됐고 한국 측의 조약 개정 주장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강제동원·공출에 대해서는 한국이 일본의 ‘전쟁범죄’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비를 삼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에 한국 측은 개개인의 청구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반드시 조약을 개정해야 한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 학자들은 이번 2기 한일 역사공동위 활동에서 교과서 분과를 따로 신설해 교과서 역사 왜곡과 공동 역사교과서 편찬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각자의 견해를 병기했다. 양국 학자들은 또 첨예한 쟁점으로 꼽히던 독도와 청구권 문제는 공동연구 주제에서 제외했다고 공동위 측은 전했다.
한일역사공동위는 2001년 10월 발족해 2005년 5월 3년의 제1기 활동을 마쳤다. 제2기는 2007년 6월 활동을 시작해 올 2월 종료했다. 이번 보고서는 고대, 중대, 근대, 현대에 걸쳐 48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모두 4000쪽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광 위원장(고려대 교수)은 “이번 2기에서는 교과서 편찬 등 교과서 제작과 교과서에 있는 역사 문제를 거론했다는 점에서 1기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며 “역사 문제는 결국 교과서 문제로 귀착되는데, 한일 양국이 이제 그 출발점에 섰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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