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금리차이 갈수록 커져 엔화가치 하락 가속
‘105엔 시대 도래’ 전망도… 한국 수출전선 먹구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파르게 치솟던 엔화 가치가 급락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불황에 대비해 금융완화정책을 구사해온 미국이 출구전략으로 돌아선 데 반해 일본은 추가 금융완화 조치를 취하면서 달러당 엔화가치(엔-달러 환율) 하락이 뚜렷해지고 있다. 일본 기관투자가들도 엔화를 팔고 달러자산 매입에 나서면서 이 같은 경향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엔고(円高)로 반사이익을 누려온 한국 업체들은 수출 차질이 예상된다.
○ 엔고 시대 끝나고 엔저(円低) 시대 오나
29일 도쿄외환시장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은 오후 8시 현재 92.44엔에 거래돼 이달 초 89.09엔에 비해 3.8%나 급락했다. 1995년 7월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랐던 지난해 11월 30일 엔-달러 환율이 86.61엔이었음을 감안하면 엔화가치가 4개월 동안 무려 6.7% 가까이 떨어진 셈이다. 일본 금융계에서는 엔화 가치 하락이 갈수록 빨라져 조만간 달러당 ‘105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엔화 가치가 이처럼 급반전한 것은 미국의 출구전략과 일본의 추가 금융완화정책이 겹치면서 금리 차이가 현격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달 금리를 올린 데 이어 주택담보증권의 매입을 이달 말로 중지하는 등 금융완화정책을 다시 옥죄고 있다. 반면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지난해 말 정책금리(0.1%)를 동결한 데 이어 이달 들어서는 시중은행에 국채를 담보로 0.1%의 고정금리로 총 20조 엔의 추가 유동성을 공급했다. 과도한 유동성이 엔화가치를 지속적으로 하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달 4일 현재 런던은행간거래금리(리보)의 3개월물 달러 금리가 엔 금리를 넘어선 데 이어 6개월물 금리도 거의 비슷한 수준에 근접했다.
문제는 일본 생명보험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달러 금리 인상을 노리고 엔화를 팔아 미국채 등 달러 자산 확보에 나서면서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생보사들은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환 손실을 줄이기 위한 환 헤지를 해지하면서까지 달러를 사들이고 있다. 그만큼 기관투자가들은 엔화 약세를 확신하고 있다는 의미다.
○ 표정 엇갈리는 한일 수출업체
극심한 불황과 디플레에 허덕이고 있는 일본 경제로서는 엔화가치 하락이 반가운 소식이다. 내수가 좀처럼 회복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엔저로 인한 가격경쟁력 회복이 수출에 돌파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엔화가치가 10엔 오르면 수출이 타격을 받아 국내총생산(GDP)이 0.26%까지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엔고로 반사이익을 누려온 한국 업체는 수출에 적잖은 차질이 예상된다. 금융위기 이후 원화가치는 급락한 반면 엔화가치는 크게 상승해 한일 기업 간의 뚜렷한 가격경쟁력 차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정보기술(IT) 완제품과 산업 부품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 일본 제품과 경합하는 제품이 많아 엔저 효과가 가격경쟁력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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