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앞둔 남아공 백인우월조직 지도자 피살… 긴장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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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5일 03시 00분


‘흑백 충돌 잔혹사’ 되풀이 우려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 열리는 월드컵 대회 개막을 10주 앞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백 갈등이 다시 불거지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3일 남아공 서북쪽 벤테르스도르프의 한 농장에서 백인 우월주의 조직 지도자인 유진 테러블랜치 씨(69·사진)가 침대에서 손도끼와 쇠파이프로 끔찍하게 살해된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결과 이 농장에서 일한 적이 있던 15, 21세의 노동자가 임금 체불에 불만을 품고 저지른 범행으로 밝혀졌다. 테러블랜치 씨는 1973년 백인 동료 6명과 함께 극우 조직 ‘아프리카너(네덜란드계 토착 백인) 저항운동(AWB)’을 창설해 백인만을 위한 국가를 세우고 흑인에게는 임시 노동자 자격만 주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2001년 주유소 경비원을 살해하려 한 혐의로 3년간 옥살이를 하고 출소했지만 2008년 3월 AWB의 활동 재개를 선언했다.

이번 사건에 앞서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청년동맹의 줄리우스 말레마 의장은 집회에서 ‘반(反)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 운동 시절 투쟁가였던 “보어(아프리카너)를 살해하라”라는 가사가 담긴 노래를 불러 큰 파문을 일으켰다. 말레마 의장은 흑백 갈등 확산을 우려한 시민단체의 소송으로 법원으로부터 이 노래를 부르지 말라는 명령까지 받았으나 이에 불응할 방침을 밝혀 흑백갈등 격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제이컵 주마 대통령은 4일 긴급 성명을 발표해 “남아공 국민은 인종적 혐오 감정을 선동하거나 자극해 상황을 악용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에게 안정을 유지할 것을 호소했다. 앤드리 비사지 AWB 사무총장은 4일 “테러블랜치의 죽음에 반드시 보복할 것”이라며 “회원들은 즉각적인 행동을 원하고 있지만, 5월 1일 예정된 총회에서 구체적인 대응조치를 논의하겠다”고 AFP통신에 밝혔다.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남아공의 흑백 갈등이 재연되는 이유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점점 심해지는 흑백 간 빈부 격차가 원인”이라고 했다. 1994년 이후 정부가 ‘흑인우대경제정책(BEE)’을 펼쳐 왔지만 여전히 요하네스버그 증권거래소(JSE)에 상장된 295개 회사 고위급 임원의 4분의 3은 백인이 차지하고 있으며 흑인 최고경영자(CEO)는 4%,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에 불과한 현실이다. 이에 대해 백인들은 “흑인들이 능력에 비해 너무 높은 자리까지 승진하고 있다” “남아공 정부는 백인을 보호해줄 능력도 의사도 없다”며 무장단체를 조직하거나 이민을 떠나고 있는 상황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남아공 정부가 흑인거주지역 소웨토부터 백인이 거주하는 상업·금융중심지구 샌턴 지역까지 연결되는 버스 노선을 신설하려는 계획도 인종 갈등 때문에 무산됐다. AP통신은 “수만 장의 월드컵 경기장 티켓과 호텔 룸이 팔리지 않은 상황에서 인종 갈등과 치안 불안이 겹쳐 남아공 정부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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