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 野 “국정 장악”…5년만에 또 ‘튤립 혁명’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9일 03시 00분


과도정부 출범… 바키예프 대통령 지방피신혁명동지 오툰바예바 과도정부수반에美 ‘마나스 공군기지 폐쇄 될라’ 촉각외교부, ‘여행자제 지역’ 지정

중앙아시아의 전략 요충 키르기스스탄에서 발생한 대규모 유혈 소요 사태가 시민혁명을 통한 정권교체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61)의 퇴진을 요구하는 야당 등 반정부 세력은 7일 밤 대통령청사를 비롯한 주요 관공서를 장악한 뒤 과도정부 출범과 의회 해산을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군경이 충돌해 전국적으로 75명이 숨지고 1000여 명이 부상했다고 보건부가 8일 발표했다. 시위대 측은 사망자가 100여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반정부 세력은 국영라디오를 통해 다니야르 우제노프 총리가 사임했으며, 로자 오툰바예바 전 외교장관(60·여)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가 출범했다고 발표했다. 오툰바예바 과도정부 수반은 8일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6개월 뒤 실시될 것”이라며 “앞으로 6개월간 과도정부가 나라를 통치한다”고 밝혔다.

○ 기대가 실망으로


바키예프 대통령은 5년 전 자신이 집권했던 때와 거의 같은 방식으로 권좌에서 쫓겨날 운명에 처했다. 바키예프 대통령은 2005년 키르기스스탄을 뒤흔들었던 ‘튤립(레몬)혁명’을 이끌었던 주역이다. 그는 이날 소형 비행기를 타고 수도 비슈케크를 빠져나가 남부인 오시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튤립혁명은 2003년 그루지야 ‘장미혁명’, 2004년 우크라이나 ‘오렌지혁명’과 더불어 부패하고 낡은 공산주의 엘리트층을 몰아낸 대표적인 시민혁명에 이름을 올렸다. 국민적 염원을 안고 대통령에 당선된 바키예프는 취임 당시 “정치적 자유를 존중하고 키르기스스탄을 안정시키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스카르 아카예프 전 대통령이 축출된 이유가 된 부정부패와 정실주의 폐해를 자신도 반복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들과 친척 측근을 정부 및 경제기관의 요직에 임명하고, 언론과 반정부 활동가들을 탄압하는 등 폭압정치를 강화해 갔다. 부정선거도 서슴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바키예프 대통령을 몰아낸 반정부 세력의 지도자는 튤립혁명의 주역으로 함께 활약했던 오툰바예바 과도정부 수반이었다.

○ 마나스 공군기지 운명은

최근 몇 년간 미국과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의 한복판에 있는 키르기스스탄 내 마나스 미 공군기지 문제로 줄다리기를 벌여왔다. 미국은 7일부터 마나스 공군기지를 일시 폐쇄했고, 폭력사태가 발생해 유감이라며 법질서 존중을 촉구했다. 오툰바예바 수반은 “마나스 기지 사용에 대한 양국 간 합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계속 유지 방침을 시사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수행 중인 미국은 마나스 기지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 병참에 큰 차질을 빚게 된다. 지난해 2월 키르기스스탄은 미국에 기지 사용계약 연장을 거부하며 퇴거를 요청했다. 다급해진 미국은 바키예프 정부에 당시 1700만 달러였던 연간 기지사용료를 6000만 달러로 3배 이상 인상하며 기지 사용 연장에 성공했다.

한편 외교통상부는 8일 키르기스스탄 전역을 여행경보 2단계인 ‘여행자제’ 지역으로 지정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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