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만 도시 전체가 폐허로…그곳은 거대한 흙무덤이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17일 03시 00분


“생존시한 72시간” 주민들 맨손으로 파내여진 공포에 대부분 말 잊고 퀭한 눈만…이헌진 특파원 中칭하이 강진 현장 1信

16일 중국 칭하이 성 위수 짱(티베트)족자치주 위수 현의 제구 진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가옥 앞에서 아이들이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 평균 해발 4000m가 넘는 이 지역은 밤이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만 텐트 등 구호물자가 제때 공급되지 않아 이불 한 장으로 몸을 둘둘 말아 자야 하는 주민이 태반이다. 뒤편에서 장난스레 웃고 있는 아이들의 미소가 더없이 애처롭다. 제구=이헌진 특파원
16일 중국 칭하이 성 위수 짱(티베트)족자치주 위수 현의 제구 진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가옥 앞에서 아이들이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 평균 해발 4000m가 넘는 이 지역은 밤이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만 텐트 등 구호물자가 제때 공급되지 않아 이불 한 장으로 몸을 둘둘 말아 자야 하는 주민이 태반이다. 뒤편에서 장난스레 웃고 있는 아이들의 미소가 더없이 애처롭다. 제구=이헌진 특파원
“이곳이 마을이었다니.”

14일 발생한 강진의 진앙인 중국 칭하이(靑海) 성 위수(玉樹) 짱(藏·티베트)족자치주 위수 현의 제구(結古) 진 시퉁(西同) 신젠루(新建路) 위쪽 산기슭 마을. 16일 오전 기자가 도착한 이곳엔 흙무더기만 쌓여 있어 촌락의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과연 이곳이 수십 가구가 모여 살던 마을이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14일 오후 9시 베이징(北京)에서 비행기로 칭하이 성의 성도 시닝(西寧)에 도착한 뒤 다시 승합차로 갈아타고 34시간 만인 16일 오전 7시 현장에 겨우 도착했다. 위수 짱족자치주의 주정부 청사가 있는 인구 2만3000여 명의 작은 도시 제구 진은 중심지 전체가 폐허 그 자체였다.

제구 진 중심지에선 흙먼지와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중심지를 관통하는 큰길 양쪽엔 일부 콘크리트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집이 붕괴됐다. 주민들은 부서지지 않은 집에도 들어가길 꺼렸다. 여진 때문이다. 공터에 모인 주민들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모닥불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족을 잃은 이들은 말도 함께 잊었다. 말을 건네면 눈물부터 흘렸다.


이날 오전 11시경 산시(山西) 성에서 온 무장경찰부대가 재해 주민에게 쌀죽 한 그릇씩을 배급할 때 바로 뒤편에서 시신 한 구가 새롭게 발견됐다. 이 무장경찰부대의 한 상교(上校)는 “가족 전체가 자다가 한꺼번에 사고를 당한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15∼20세의 젊은이들이 직업훈련을 배우던 위수 직업기술학교에는 학생 대신 중국 인민해방군과 굴착기들로 넘쳐났다. 3층짜리 여학생 기숙사는 완전히 무너져 콘크리트 더미로 변했다.

현장 구조대장은 이곳을 방문한 란저우(蘭州) 인민해방군 고위 장교들에게 “3층짜리가 1층으로 변해 생존공간이 없을 확률이 크다”며 “어제 처음 시신 2구를 발견했으나 몇 명이 더 있는지는 파악 중”이라고 보고했다. 주민들은 수백 명이 묻혔을 것이라고 전했다. 티베트족인 웨이지(偉吉·30·여) 씨는 “내 조카가 이 더미 속에 있다”며 눈물을 훔쳤다.

무너지지 않은 건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소변이 급해 사원의 담벼락 뒤에서 일을 보려 하자 한 주민이 헐레벌떡 뛰어오며 말린다. 언제 여진이 올지 모르니 담 가까이 붙지 말라는 것이다. 이날 아침에도 여진에 담 일부가 무너졌다.

제구 진에서 티베트 불교사원 중 가장 큰 제구(結古)사 제단에는 모포로 싼 600여 구의 시신이 안치돼 있었다. 사원 측은 당초 수습한 1000여 구의 시신 중 400여 구는 이미 장례를 치렀다고 전했다. 현지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사망자가 1만 명에 이른다”며 ‘중국 정부의 1000여 명 사망·실종’ 발표를 부인했다.

○ 생존시한 72시간 재깍재깍

지진이 발생하면 3일 안(72시간)에 구조하지 않으면 생존 확률은 급격히 떨어진다. 하루 뒤인 17일 오전이면 72시간이 되기 때문에 도시는 이날 하루 구조를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주민들은 손으로 흙을 파내고 있었다. 칭하이 산둥(山東) 쓰촨(四川) 등 각지에서 온 성 구조대와 광둥(廣東) 성 둥관(東莞) 시 등에서 온 전문구조대가 생명탐지 장비를 들거나 구조견과 함께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폐허 더미 곳곳에서 “누군가 있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주민들과 구조대가 흙과 나무를 열심히 파내고 있었다. 이날 하루에도 생존자를 구조했다는 소리가 여러 곳에게 들려왔다. 쓰촨구조대의 한 대원은 “방금 흙더미에서 꺼낸 사람이 죽은 줄 알았는데 숨을 쉬어 병원으로 이송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인민해방군과 무경, 특경(特警), 공안이 총동원돼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부상자는 현장에서 긴급 조치를 받은 뒤 곧장 비행기로 시닝 청두(成都) 등으로 이송됐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이날 오전 이곳을 방문해 구조대를 격려하고 총력구조를 다짐했다.

○ 구호품 도착 늦어 생필품 태부족

칸칸줘마(看看卓瑪·38·여) 씨 가족을 포함해 4가족 16명은 공터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웃사촌인 이들은 집이 모두 무너지자 옆 공터에 함께 임시거처를 마련했다. 거처라고 해야 노천 바닥에 이불만 깐 것이다. 이들은 화덕 하나에 나무를 때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16명 가운데 8명은 6∼12세의 어린이다.

평균 해발 4000m가 넘는 이곳은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 또 바람이 많이 불어 체감온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이불 속에서 눈만 내놓은 아이들은 모두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칸칸줘마 씨는 “밤에 너무 추워 텐트가 시급하다”며 “아이들이 모두 감기에 걸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칸칸줘마 씨 외에도 텐트 부족을 호소하는 주민이 많았다. 이들은 텐트가 불공평하게 배급됐다고 불평했다. 통신은 15일 오후 복구됐지만 전기는 여전히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이재민 텐트촌에서는 발전기 한 대에 40여 대의 휴대전화를 충전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전기와 텐트 부족에 대한 불평은 사치에 가깝다. 쓰촨 성에서 자원봉사를 온 의사 장샤오훙(張小紅) 씨는 “사실 마실 물과 음식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한 구호 관계자는 “오늘 오후부터는 구호물자를 실은 트럭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사정이 크게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구조대의 대장은 “우리도 텐트가 없어 맨땅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고 있다”고 토로했다.

○ 사망자 791명으로 늘어

중국 위수지진구조지휘대책본부가 16일 오전 8시(현지 시간) 현재까지 집계한 사망자는 791명, 실종 294명, 부상 1만1486명이다. 부상자 가운데 1176명은 중상자다. 중국 당국은 사망자 1인당 5000위안, 이재민에게는 하루 10위안과 500g의 식량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신징(新京)보가 보도했다.

한편 일본 대만 등 국제사회가 구조 협력 의사를 표시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민정부의 재난구조사 쩌우밍(鄒銘) 사장(司長·국장급)은 “중국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며 완곡히 거절했다.

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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