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거리는 유니폼을 입고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어주는 도어맨(doorman). 미 뉴욕의 부유층 아파트나 고급 부띠크 건물에서 어김없이 찾아볼 수 있는 도어맨은 샛노란 택시만큼이나 유명한 뉴욕의 상징이다.
이런 도어맨들이 19년 만에 총파업을 선언하면서 뉴욕의 부촌에 비상이 걸렸다. 도어맨들이 갑자기 사라지면 일상이 마비될 정도로 불편하다는 아우성이 쏟아지고 있는 것. 도어맨들은 입주민들의 우편물을 분류, 전달해 주고 쓰레기 처리를 도와주거나 짐을 옮겨주는 등 입주민들을 위한 각종 서비스를 도맡아 해왔다. 로비의 화분에 물을 주거나 택시를 잡아주는 일도 이들의 몫이었다.
뉴욕의 도어맨 3만 여명이 소속돼 있는 도어맨노조는 최근 건물주 대표단과의 임금협상에 실패하자 파업을 선언했다. 20일 자정까지 임금 인상 및 복지서비스 개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바로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도어맨 파업은 1991년 이후 처음이다.
국제서비스근로자협회(SEIU)에 따르면 도어맨들의 연봉은 평균 4만 달러, 건물주들은 각종 수당을 합칠 경우 실질 연봉이 6만8000~7만 달러까지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부동산 가격의 급락과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도저히 도어맨 연봉을 올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설마 하던 파업사태가 코앞에 닥치자 화들짝 놀란 일부 뉴요커들은 "내 손으로 직접 문을 열고 쓰레기를 치우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맨해튼의 부촌인 어퍼웨스트사이드와 명품 상점이 몰려있는 5번가 주민들이 난색을 표명했다. 이들은 도어맨이 하루만 없어도 승무원이 하나도 타지 않는 비행기를 탄 것 같은 불안함을 느낀다는 것. 입구를 단속할 사람이 사라지면 수상한 외부인이 침입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25년간 5번가에서 도어맨으로 일해온 시세로 로스 씨는 "입주민들이 생활에 큰 불편함을 겪게 됐다며 걱정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은 내가 없어도 택시를 잡을 수 있지 않느냐"며 "그냥 거리로 나가서 손을 뻗어 흔들면 무언가 오기는 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언론은 "부자들이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할 운명의 날(doomsday)이 오고 있다"며 도어맨들의 파업 준비 상황을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도어맨 파업시 문을 여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문에 다가간다 △문고리를 잡는다 △딸깍 소리가 날 때까지 오른쪽으로 돌린다 등의 내용으로 희화화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유럽 언론들도 20일 "뉴요커들이 도어맨 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며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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