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 이어 화산폭발 겹친 아이슬란드의 두 표정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2일 03시 00분


없는 살림 떠받치던 관광업 타격 “고통”
빚갚으라 들볶던 英 화산재 피해 “쌤통”

“영국은 cash(현금)를 요구했지만 아이슬란드어에는 c가 없어 대신 ash(재)로 갚아” 우스개도

인구 31만 명인 북유럽의 작은 섬나라 아이슬란드. 최근 전 세계의 이목이 이 소국(小國)에 쏠렸다. 14일 아이슬란드 남부에 있는 에이야D랴외퀼 화산이 폭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화산재로 유럽 전역의 비행기들이 일주일째 발이 묶이는 항공대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서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국가부도 사태에 빠진 이 나라가 다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셈이다.

항공대란은 차츰 수습 국면에 들어서고 있지만 아이슬란드는 화산 폭발에 따른 후폭풍으로 고생하고 있다. 화산 폭발이 아이슬란드 내륙에 직접적으로 큰 피해를 미친 것은 아니다. 아이슬란드 국방위원회의 스반보르 시그만스도티르 대변인은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화산폭발 지역의 화산재는 대부분 6∼7km 상층부로 치솟아 유럽대륙으로 흘러갔다”고 전했다.

하지만 화산 근처의 농가 피해는 심각하다. 아이슬란드 농민협회에 따르면 화산폭발로 분출된 화산재 및 용암과 홍수로 인근 농지가 심각한 피해를 입어 농민 700여 명이 농지를 떠나거나 아예 농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다.

아이슬란드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관광업계의 타격도 크다. 수도인 레이캬비크 공항은 오히려 문제가 없었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을 보내는 유럽대륙의 공항들이 폐쇄되는 바람에 항공편이 끊겨 관광업계가 위기에 빠졌다. 현지 언론사 기자인 잉기비요크 로사 씨는 “금융위기 이후 아이슬란드 화폐가치가 유로화의 절반으로 떨어지면서 유럽 관광객들이 몰려 특수(特需)를 누렸지만 이번 사태로 관광업마저 위기에 몰려 있다”고 전했다.

2008년 금융위기는 국민을 분열시켰지만 천재지변인 이번 화산폭발은 아이슬란드인들이 다시 뭉치는 계기가 되고 있다. 2008년 이 나라는 주요 은행들이 부도나면서 국민 1인당 5억 원 규모의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그 여파로 지난해 초 시민 봉기로 정권이 바뀌었다. 하지만 인재(人災)가 아닌 천재(天災)가 일어나자 국민들 사이에 ‘서로 힘을 합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슬란드인이 이번 화산폭발로 서방 국가에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이다. 특히 영국이 이번 화산폭발 피해를 가장 크게 보게 된 것을 은근히 고소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아이슬란드 최대 은행인 란즈방키는 인터넷 자회사인 아이스세이브를 통해 고금리로 57억 달러의 해외 자금을 유치했다가 2008년 10월 파산했으며 32만 예금자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한 영국은 아이슬란드 정부에 예금 상환 압박을 계속해왔다. “영국은 아이슬란드에 현금(cash)을 요구했지만 아이슬란드어에는 알파벳 ‘c’가 없어 대신 잿더미(ash)만 줬다”는 농담도 떠돈다.

천재지변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기도 한다. 한 여행사는 ‘헬리콥터 화산투어’ 상품을 팔고 있다. 레이캬비크에서 출발해 75분 동안 화산 지역을 헬기로 돌며 용암과 화산재 구름의 장관을 보는 이 투어 가격은 1인당 250유로(약 37만5000원). 회사 측은 “평생 잊지 못할 환상적인 경험이 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