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벤 섬의 감옥축구(남아공)흑백차별 이긴 ‘교도소 축구’남아공 월드컵을 잉태하다1969년부터 20여년간 흑인 양심수들의 리그현 대통령은 당시 협회심판 국토부 장관은 미드필더지금은 철책-풀만 무성해도 ‘무지개 나라’ 만든 희망의 공
노매드 어드벤처 투어의 오버랜드 트러킹(Overland Trucking) 출발지는 케이프타운. 아프리카대륙 최남단을 아우르는 케이프 반도 중심의 항구도시이자 아프리카 최고의 휴양관광지다. ‘희망봉’이 있는 케이프포인트가 예서 65km 거리다.
케이프타운에 도착한 것은 출발 이틀 전인 3월 29일(현지 시간)이었다. 나미비아 입국비자를 받기 위해서인데, 케이프타운∼빅토리아 폭포 20일 일정의 투어를 위해 미리 입국비자를 발급받아야 할 나라는 나미비아뿐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새로 지은 월드컵축구장 케이프타운 스타디움과 남아공 월드컵을 ‘게임 이상의 게임’으로 승화시킨 감옥 축구의 산실, 로벤 섬 교도소를 취재하는 것이었다.
3월 30일 오전 9시. 케이프타운은 우리 5월처럼 맑고 화창했다. 항구 중심은 테이블베이의 워터프런트. 14km 밖 로벤 섬행 페리가 여기서 출발한다. 11년 만에 다시 찾은 로벤 섬 교도소.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의 옛 백인정부가 유지했던 흑백 인종차별정책) 당시 남아공 백인정부를 상대로 투쟁하다 투옥된 흑인 반정부인사가 수감됐던 역사의 현장이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도 27년 수형생활 중 18년을 여기서 보냈다.
로벤 섬은 3시간 반(페리 승선 왕복 한 시간 포함)짜리 패키지투어로 다녀온다. 감옥투어 안내는 과거 재소자가 맡는데 그날은 10년간 수감됐던 벤저민 타우 씨였다. 만델라 전 대통령이 있었던 감방부터 찾았다. 가로 3m, 세로 2m의 감방에는 콘크리트 바닥에 겹쳐 깐 담요 몇 장, 금속식기와 잔을 포개 놓은 작은 나무탁자, 양철 변기통이 전부였다. 철창 밖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공동작업장이다.
이 감방은 만델라 전 대통령의 ‘용서와 화해’ 정책을 1995년 럭비월드컵을 통해 보여준 감동적인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Invictus)’에도 등장한다. ‘저런 곳에 18년을 갇히고도 어떻게 그런 고통을 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지…’라는 스프링복스(남아공 국가대표 럭비팀) 주장 프랑수아 피나르의 독백이 인상적이었다.
로벤 섬의 감옥축구는 남아공 월드컵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 내용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More Than Just A Game)’이란 책과 다큐 필름을 통해 이미 세상에 알려졌다. 1969년부터 20여 년간 로벤 섬 교도소 안에서 흑인 양심수들이 스스로 펼친 ‘그들만의 리그’인데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고 무지개나라(Rainbow Nation·만델라 전 대통령이 주창한 인종 피부색의 차별 없는 나라)를 세우는 밑거름이 됐다는 게 요체다.
1990년 만델라 전 대통령의 석방과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1994년 흑인대통령 선출로 이어진 남아공의 혁명에서 감옥축구는 큰 몫을 했다. 현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당시 마카나축구협회의 심판, 토쿄 젝스왈레 국토부 장관 겸 남아공 월드컵 조직위원은 이 리그의 미드필더 선수이자 협회의 지도자였다.
남아공 월드컵이 로벤 섬 교도소의 마카나축구협회에서 잉태됐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축구가 단순한 공차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게임 이상의 게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이었고 국제축구연맹(FIFA)까지도 감동시킨 ‘소통의 언어’여서다.
2007년 7월 18일. 그날은 만델라 전 대통령의 89세 생일이었다. 리그를 펼쳤던, 하지만 지금은 잡초로 뒤덮인 로벤 섬 교도소의 축구장 녹슨 골대에 유명 축구선수와 FIFA 관계자가 모였다. 그리고 89개의 공을 하나씩 차 넣었다. 그중 마지막 다섯 개는 마카나축구협회 5명의 몫이었다. 축구가 ‘세상과 소통하는 언어’임을 보여준 로벤 섬 감옥축구에 대한 경의와 칭송의 표시였다.
감옥을 나와 축구장을 찾았다. 감방 오른편 높은 감시탑 아래 에두른 철책과 풀만 무성한 공터만 보일 뿐 골대가 없어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골대 행방을 묻자 ‘누군가 가져갔다’는 대답이다. 다른 흔적은 남아 있었다. 사이드라인 바깥에서 엉덩이만 걸친 채로 관전할 수 있게 만든 목책형태의 나무받침들인데 전해지는 유일한 로벤 섬 감옥축구 사진에 등장한다.
섬에서 돌아와 케이프타운의 시그널 힐에 올랐다. 거기서 본 로벤 섬은 해저드로 둘러싸인 아일랜드 그린처럼 덩그러니 바다 한가운데 표표히 떠 있었다. 워터프런트 왼쪽 해안의 케이프타운 스타디움과 마주한 채.
14km 거친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이 두 축구장. 그건 둘이 아니다. 하나로 통해서다. 아파르트헤이트를 이겨낸 감옥축구, 그것을 소통의 언어로 끌어올린 마카나축구협회, 그것을 바탕으로 무지개나라를 건설 중인 흑인지도자 모두…. 그래서 남아공 월드컵은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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