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후광…反부패 의지… 母子대통령 탄생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12일 03시 00분


모친 코라손 아키노 지난해 사망
추모열기 속 출마… 압도적 승리

아로요 정권 비리에 성난 국민들
공직자 사정-부패척결 공약 지지

필리핀 민주화의 상징인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의 아들인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상원의원(50·자유당)이 제15대 필리핀 대통령에 사실상 당선됐다.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는 11일 오후 현재 79%의 개표 결과 아키노 상원의원이 40.19%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조지프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73·국민의 힘)은 25.5%, 마누엘 비야르 상원의원(61·국민당)은 13.9%를 얻어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아키노 당선자의 부친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에게 항거해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1983년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당한 베니그노 아키노 전 상원의원이며, 모친은 1986년 ‘피플 파워’ 혁명의 주역인 고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이다. 그의 당선으로 세계 정치사상 최초로 ‘모자(母子) 대통령’이 탄생했다.

아키노 당선자는 부모의 후광을 업고 1998년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해 3차례 하원의원을 지낸 뒤 2007년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지난해 8월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이 대장암으로 사망하자 추모열기 속에서 대선후보 경쟁에 뒤늦게 뛰어든 그는 청렴한 이미지와 강력한 반부패 공약을 내세워 압도적 승리를 거머쥐었다.

아키노 당선자는 11일 기자회견에서 “나는 단순히 나 혼자만 ‘도둑질하지 않겠다’라고 약속하지 않겠다. 모든 권력주변의 비리를 뿌리뽑겠다”며 강한 부패척결 의지를 밝혔다. 그는 취임 후 몇 주 안에 글로리아 아로요 정권의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공직자를 수사하는 사정팀을 발족시킬 예정이다. 그는 또 예산 절감을 위해 해외 순방을 자제하고 정부기구를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국민이 정부의 잘못을 고발하기 위해 거리를 점거하고 시위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 AP통신은 “최근 9년간 부정부패와 무능으로 점철된 아로요 정권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했다. 집권 ‘여당연합’인 라카스-캄피-CMD의 대선후보인 길베르토 테오도로 전 국방장관(45)은 4위에 그쳐 필리핀 국민이 아로요 정권에 등을 돌렸음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로요 대통령 측의 반발도 만만찮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로요는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고향인 팜팡가에서 하원의원에 출마해 9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아로요 대통령이 정권 이양에 얼마나 협조하는가가 향후 필리핀 정국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 씨(80)도 고향인 북부 일로코스노르테 주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그의 아들 마르코스 2세(52)도 상원의원에, 장녀 이메(56)는 일로코스노르테 주지사에 당선됐다. 이로써 1986년 피플파워 혁명 이후 하와이로 망명했던 마르코스 일가도 필리핀 정계에 복귀해 필리핀의 뿌리 깊은 ‘가문정치’의 힘을 보여주었다.

대통령 국회의원 주지사 등 1만7888명의 공직자를 뽑은 이번 선거에는 필리핀 사상 최초로 자동투개표 시스템이 도입됐다. 투표기의 고장으로 투표가 중단되고, 20여 명이 사망하는 선거 관련 폭력사태에도 이번 선거는 투표율이 75%에 이를 정도로 높은 관심 속에 치러졌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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