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수도 방콕의 중심가에 며칠째 자국 시민의 피가 흐르지만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82·사진)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있다.
5일로 왕위에 오른 지 60년을 맞은 푸미폰 국왕은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 태국의 현 소요사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꼽힌다. 태국 국민에게서 추앙받는 그는 1973년, 1982년, 1992년 쿠데타로 군부와 민주화세력 간에 유혈사태가 발생했을 때 직접 개입해 상황을 진정시켰다. 그는 지난해 9월 폐렴증세 등으로 입원한 이래 처음으로 지난달 26일 11분간 공개 연설을 했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아 장기간의 혼란에 지친 많은 국민을 실망시켰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16일 푸미폰 국왕의 긴 침묵의 이유로 첫째, 반정부 시위대가 도전하는 현 태국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 바로 국왕 지지세력이라는 점을 들었다. 입헌군주제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는 현 정부와 군부, 관료 계층을 무시한 채 왕실에 부정적이었던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를 지지하는 반정부 시위대를 지원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둘째로 입헌군주제에 대한 태국 국민의 현실적 태도 변화 조짐을 들었다. 이번 시위 현장에서는 과거 도심 시위와는 달리 푸미폰 국왕의 초상화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록 반정부 시위대는 ‘입헌군주제를 뒤엎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시위대 간의 대화 속에서는 국왕에 대한 존경의 정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호(17일자)에서 “태국이 진정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국왕의 개입에만 의존하는 것은 민주주의로의 발전을 저해할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반정부 시위대는 16일 “국왕이 마지막 희망”이라며 “지금이야말로 유혈사태를 막아달라고 국왕에게 부탁드릴 때”라고 밝혔다. 푸미폰 국왕은 과연 입을 열 것인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