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군경의 강제진압 작전으로 시위대 지도부가 항복하고 해산하면서 두 달여간 계속된 방콕의 반정부 시위가 일단락됐다. 하지만 상당수 시위대원들이 TV방송국과 주식거래소 등 시내 주요 건물 20여 곳을 방화하며 저항하고 있어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태국 법원은 19일 탁신 친나왓 전 총리에게 테러 혐의를 추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 강제 해산에 무릎 꿇은 시위대
태국 정부는 19일 오전 6시경(현지 시간) 장갑차 40여 대와 군경 수천 명을 투입해 방콕 랏차쁘라송 일대를 점거한 시위대에 대한 강제해산 작전을 개시했다. 태국 정부의 전격적인 강제해산 작전은 태국 상원의 중재로 협상을 재개하는 방안을 정부가 거부한 지 하루 만에 이뤄졌다.
시위대 점거 지역은 이날 새벽부터 군 병력을 태운 군용 트럭이 속속 도착했으며, 군용 헬리콥터가 떠 정찰활동을 벌였다. 오전 6시 해산 작전에 돌입한 군은 장갑차 10여 대를 점거지역 남쪽 끝인 살라댕 교차로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렸다. 폐타이어와 대나무 등을 쌓아 만든 바리케이드가 무너지자 시위대는 후퇴하기 시작했다. 남쪽 시롬과 클롱뜨이, 북쪽의 딘댕 지역에서도 군과 시위대가 격렬히 충돌했다.
군이 밀어붙이자 시위대 속 어린이와 노약자 수백 명은 울음을 터뜨리고 비명을 질렀다. 최루탄을 견디지 못해 마스크를 쓰고 도망치는 모습도 보였다. 시위대 지도자인 나따웃 사이꾸아 씨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자리를 지켜 달라”고 호소했지만 남북 양쪽에서 밀고 들어오는 군을 당해내긴 역부족이었다.
결국 시위대는 밀리기 시작했고 오전 11시 무렵 룸피니 공원이 군에 장악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군이 핵심 거점인 랏차쁘라송 교차로를 향해 거침없이 진격하자 시위대의 전열은 완전히 무너졌다. 결국 오후 1시 반경 시위대 지도부는 남아 있는 수백 명의 시위대를 향해 “더는 희생을 원치 않는다. 항복한다”고 선언했다. 지도자인 자뚜뽄 쁘롬빤 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지금 우리가 항복했다고 완전히 진 것은 아니다”라며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작전 시작 7시간 40분 만인 오후 1시 40분경, 시위대 지도부 7명이 경찰에 자수했다. 이로써 3월 12일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68일 만에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군경과 시위대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져 이탈리아 사진기자 파비오 폴렝기 씨와 시위대 시민 5명 등 6명이 숨졌고 60여 명이 다쳤다. 이로써 3월 12일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최소 74명이 숨지고, 1800여 명이 다쳤다.
○ 도심 곳곳 화재…악재 많아 시위 재발 가능성도
시위대의 방콕 도심 점거는 일단 끝났지만 태국은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강경파 시위대가 증권거래소와 방콕 전력청 건물, 대형 쇼핑몰인 센트럴월드, 시암영화관 등에 불을 질러 방콕 시내가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친정부 성향의 채널3 방송국은 시위대의 공격을 받아 오후 3시 반경부터 방송이 중단됐고, 100여 명이 불길에 갇혔다가 구조됐다. 일부 신문사는 시위대의 침입을 우려해 직원들을 대피시켰다. 경찰은 1000여 명의 특수경찰을 방콕 전역에 배치했으며 “약탈, 방화, 선동을 하는 자에 대해서는 즉각 발포하라”고 지시했다.
또 방콕에 북쪽으로 인접한 논타부리에서는 시위를 벌이던 200여 명의 ‘레드셔츠’들이 시청 진입을 시도했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지지자들이 많은 북동부 지역의 우돈타니 주와 콘깬 주에서는 시위대가 관공서에 난입하거나 불을 지르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에 정부는 이날 오후 8시부터 20일 오전 6시까지 방콕과 23개 주에 통행금지를 선포했다.
앞으로도 불씨는 계속 남아 있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었던 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도농(都農), 빈부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탁신 전 총리가 건재하고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여전히 강해 언제라도 시위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 태국 정부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일부 시위대 핵심 인사들이 방콕 외곽으로 빠져나가 새로운 거점을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탁신 전 총리는 현지 TV와의 통화에서 “정부의 강제해산으로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서 시위가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 정치 싸움에 애꿎은 시민만 희생
강제해산으로 시위 사태가 일단락된 것에 대해 현지에선 “이번 시위는 평화적으로 해결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달 3일 아피싯 총리가 조기총선 실시를 골자로 하는 타협안을 제시했을 때 시위대가 이를 받아들였다면 이후 숨진 40여 명의 인명은 구할 수 있었다. 또 최근 국제사회와 태국 상원이 잇따라 중재에 나섰을 때 정부가 이를 수용했다면 군을 동원한 강제해산과 추가 인명 피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도록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아피싯 총리, 침묵으로 일관한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과 함께 시위대의 실질적 최고지도자인 탁신 전 총리에 대한 비난이 높다. 현지 일간 네이션은 “탁신 전 총리가 시위대 해산의 전제 조건으로 자신의 사면, 몰수된 재산 환원, 여권 갱신 등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했다”고 지적했다. 한 교민은 “탁신 전 총리가 자신을 따르는 시위대에 ‘이제 그만 하자’고 한마디만 했으면 쉽게 마무리됐을 일인데 결국 강제진압으로 이어져 애꿎은 사람들만 숨진 셈”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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