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펑의 6·4일기’ 돌연 출간취소…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1일 03시 00분


“후진타오-원자바오 톈안먼사태 무력진압 지지” 기록

“저작권 문제” 출판사 해명에도
中 현지도부와의 마찰 우려
자진철회-당국개입 등 說분분

1989년 6월 4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 총리였던 리펑(李鵬·82)의 회고록 ‘리펑의 6·4 일기’가 22일 홍콩에서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취소됐다.

리 전 총리의 책 출판을 맡았던 홍콩 신세기출판사는 19일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 “‘관계기관’이 제공한 저작권에 관한 정보와 홍콩의 저작권법에 따라 출간 계획을 취소한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발표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20일 보도에 따르면 톈안먼 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당시 총서기의 정치비서인 바오퉁(鮑동)의 아들이기도 한 바오푸(鮑樸) 출판사 대표는 1월 말 ‘중개인’으로부터 리 전 총리의 원고를 전달받아 출간을 계획했으나 어느 기관이나 개인과 저작권 계약은 맺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홍콩 ‘개방잡지(開放雜誌)’의 편집장 차이융메이(蔡詠梅) 씨는 이 같은 저작권 문제보다 회고록 내용 때문에 중국 당국이 출간하지 못하게 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차이 편집장은 “회고록에는 당시 티베트 당서기였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중국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이었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6·4민주화 운동에 대한 무력 진압을 지지했다고 밝히고 있어 책이 출간되면 후 주석과 원 총리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기출판사는 ‘관계기관’이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 자사 홈페이지에 리 전 총리가 왜 자신의 책을 출간하지 못했을지를 분석해 소개했다.

먼저 출판사가 6·4사태 당시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자오 전 총서기의 지지자가 운영하는 것인 점, 그리고 대륙에서 금지된 책을 홍콩에서 출간하는 것이 기율 위반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현재 산시(山西) 성 부성장인 아들 리샤오펑(李小鵬)이 앞으로 더 승진하기를 바라는 상황에서 리 전 총리 부자는 현 지도부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것.

하지만 바오 대표는 리 전 총리의 회고록 출간을 통해 6·4사태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역사적인 자료를 보존하려고 했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원고의 내용이 인터넷을 통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또 원고가 실제로 리 전 총리가 쓴 것인지를 확인하고자 했던 것도 출판 중단 과정에서 증명됐다. 이 회사는 “내용을 알리거나 알고 싶어했던 리 전 총리나 출판사, 독자는 승자인 반면 출간을 막으려던 사람만 패배자”라고 회고록 출간 취소 파동을 정리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5월 6·4사태 20주년을 앞두고 자오 전 총서기의 자서전 ‘국가의 죄수’(중국어판 개혁역정·改革歷程)를 출간한 바 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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