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에서 80km가량 떨어진 고리 마을 중앙광장. 24일 날이 어둑해지자 6m 크기의 육중한 청동상이 기중기로 들어올려졌다. 운반작업에 동원된 경찰과 시공무원은 반세기 넘게 고향을 지켜온 동상을 인근 박물관 안마당으로 옮겼다. 25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옛 소련의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 동상이 하룻밤 사이 비밀스럽게 철거돼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그루지야 출신인 스탈린은 1878년 그루지야의 고리에서 태어났다. 마을에는 어릴 적 생가와 함께 사진과 편지 등 개인 소장품이 전시된 스탈린 기념박물관이 있다. 이 동상은 스탈린이 죽기 1년 전인 1952년에 세워졌다. 니키타 흐루쇼프 옛 공산당 서기장이 사후 격하운동을 통해 스탈린의 흔적을 없애던 와중에도 이 동상만은 꿋꿋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남오세티야 독립문제를 둘러싸고 2008년 8월 그루지야와 러시아가 전쟁을 벌이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그루지야 정부는 러시아와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했고 두 나라는 앙숙이 됐다.
이번 철거작업도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이 러시아를 자극하려고 한 행동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지역신문인 ‘그루지야 메신저’ 편집장은 “그루지야의 서방 친화적인 성향을 알리고 과거 소련의 공산주의 잔재를 지우려는 신호”라고 풀이했다. 대통령은 동상이 철거된 자리에 2008년 전쟁에서 희생된 그루지야인 기념비를 세우겠다고 밝혔다.
스탈린 동상 철거에 대한 주민의 반응은 둘로 갈라졌다. 스탈린을 여전히 숭배하는 사람들은 “스탈린 기념비는 우리 마을의 상징이었다” “그루지야 정부의 반달리즘(문화 파괴행위)”이라며 비판한 반면에 다른 주민들은 “그루지야에 추악한 우상을 위한 자리는 없다”며 반겼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