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자매의 어깨는 하염없이 떨리고 있었다. 끝내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터져 나오지 못했다. 아멜라와 바흐리야 자매는 그저 목관(木棺)만 붙잡은 채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눈물이 떨어지는 관 위로 큼지막히 적힌 숫자 ‘495’. 아버지(에유프 골리츠·사망 당시 56세)는 세상을 떠난 지 15년 만에야 시신 번호 495에서 본명을 되찾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발칸 반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소도시 스레브레니차에서 11일 보스니아 내전으로 인한 인종학살 15주년을 맞아 유가족 등 4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이날 묘소엔 유전자(DNA) 검사를 통해 신원이 확인된 골리츠 씨를 비롯한 유해 775구가 추가로 안장됐다. 이들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지 십수 년 만에 동족 3700여 명이 묻힌 고향 땅으로 돌아온 셈이다.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1992년부터 3년 동안 지속된 보스니아 내전의 대표적인 인종 청소 사건. 1995년 7월 당시 이곳은 유엔이 안전지역으로 선포한 지역이었으나 라트코 믈라디치 군사령관이 이끄는 세르비아군은 이슬람계 남성 주민 8000여 명을 무자비하게 몰살했다. 이후 유엔은 이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참혹한 학살”이라며 비난했다.
15년 세월에도 상처는 여전히 깊다. 무엇보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유가족이 많다. 이번에 확인된 유해를 포함해도 지금까지 희생자의 절반인 4400여 구만 돌아왔다. 16세 소녀 하이로 이브라히모비치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전범 처리도 미흡하다. BBC뉴스에 따르면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당시 세르비아군 장교 등 161명을 기소해 123명에게 종신형 등을 선고했다. 그러나 최고 핵심 주범인 믈라디치는 도주해 아직도 붙잡히지 않고 있다.
학살당사국 세르비아의 미온적 태도 역시 유족들 가슴에 피멍을 남겼다. 줄곧 책임을 부인했던 세르비아는 올해 3월에야 의회에서 공식 사과 결의안을 채택하며 태도 변화를 보였다. 하지만 ‘집단학살(genocide)’이란 용어는 생략한 채 “위로와 사과” 등 두루뭉술한 표현만 가득해 유족들의 공분만 샀다. AFP통신은 “유럽연합(EU)에 들어가고픈 세르비아의 속내가 담겼다”고 분석했다. 세르비아는 지난해 EU에 가입신청서를 냈으나 영국 등이 스레브레니차 학살 등 내전 뒤처리 미숙을 이유로 승인을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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