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환절기에 찾아오는 감기라고만 생각했다. 좀처럼 낫지 않는 것 같아 오사카대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사진 좀 찍어보자’고 했다. 2cm짜리 종양이 왼쪽 가슴에 있었다. 신혼살림을 차린 지 7개월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2008년 10월 폐암 3기 선고를 받은 에노모토 다카히데 씨(31)는 입에 담배를 대본 적도 없다. 가족력도 없었고, 사는 곳도 산림지대인 와카야마로 대기오염과는 동떨어진 곳이다.
6개월간 일본 내 대학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나아지는 기미가 없었다. 몸은 바짝 말라갔다. 가업인 벌목업도 치료를 시작하면서 그만뒀다.
한 의사가 조심스레 “한국에 가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꺼냈다. 유전자만 맞는다면 완치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었다. 망설이던 에노모토 씨에게 아버지와 부인이 격려해줬다. “한번 해보자”고. 그렇게 결심한 뒤 2박 3일 일정으로 서울을 찾은 횟수도 벌써 20번이 넘는다.
○ 폐암 유전자 발견은 일본, 치료 현실화는 한국
1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는 에노모토 씨를 비롯해 11명의 일본인이 방문했다. 히로시마, 오사카, 도치기, 후쿠오카 등 일본 각지에서 왔다. 화이자제약이 개발하고 방영주 서울대 의대 교수가 임상시험 중인 폐암 표적치료제 ‘크리조티닙’을 받기 위해서다.
반도체 부품설계를 하는 다다오 유키 씨(32)는 매달 월차를 내고 온다. 다다오 씨는 “일본에서도 올 3월부터 임상시험이 시작됐는데 좀 더 일찍 시작됐더라면 더 많은 일본인 환자가 혜택을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한국보다 2년이나 늦게 신약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조티닙 탄생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일본인 마노 히로유키 박사였다. 특정 유전자(EML4-ALK)가 폐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2007년 ‘네이처’지에 실으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치료약 후보물질을 갖고 있던 화이자제약이 임상시험 국가로 선택한 곳은 일본이 아닌 한국이었다. 임상시험 인프라나 의사의 판독 실력, 환자의 적극성이 아시아 다른 국가들보다 뛰어나다고 봤기 때문.
처음 치료를 받던 일반인 환자는 13명이었지만 현재는 11명이다. 한 명은 사망했고, 또 다른 한 명은 약에 내성이 생겨서 투약을 중단했다. 그러나 나머지 11명에게 생긴 변화는 놀라웠다.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일본인 환자들은 “그때 한국에 오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삶’을 찾아 한국까지 온 이들은 서로를 ‘전우(戰友)’라고 부른다. 에노모토 씨의 왼쪽 가슴은 지금 깨끗하다. 2cm의 종양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벌목업도 다시 시작했다. 다다오 씨 역시 처음에 9cm였던 종양 크기가 많이 줄어들었다. 두 사람의 꿈은 ‘아빠가 되는 것’.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항암치료를 받았기에 아직 미루고 있지만 ‘가능하다’는 의료진의 말에 힘을 얻었다. 마쓰모토 메구미 씨(29·여)는 폐암이 시신경에까지 전이되면서 왼쪽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크리조티닙을 투약한 뒤 시력이 0.3으로 좋아졌다. 이젠 여섯 살, 한 살인 두 딸을 돌보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 임상시험, 보이지 않는 유치 경쟁
신약 임상시험 허브가 되면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도 신(新)의료기술에 ‘노출’된다. 신약 개발 기술 축적의 기회가 된다. 경제적 효과도 적지 않다.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만 해도 2008년 139건의 임상시험을 한 뒤 제약사로부터 위탁연구비로 약 217억 원을 받았다. 특히 이 가운데 65억 원(82건)은 다국적 임상시험으로 따낸 연구비다.
현재 한국을 비롯해 세계는 신약 임상시험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의 전 세계 임상시험 점유율은 1.5%로 12위, 아시아권에서는 5위인 일본(3%) 다음이지만 도시별로 따지면 서울이 지난해 세계 3위, 아시아 1위로 올라섰다. 10년 전 30건에 불과했던 임상시험 승인건수는 지난해 400건을 돌파했다.
일본도 2007년부터 ‘임상시험 활성화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2월에는 일본제약협회에서 서울아산병원에 견학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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