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민을 우리편으로” 美-탈레반 ‘구호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5일 03시 00분


파키스탄 서북부 80년만의 대홍수로 250만명 수해
“민심얻기, 수십억달러 원조보다 재난구호가 효과적”
앞다퉈 부상자 치료하고 구호품 전달… 파軍도 가세

《 파키스탄 서북부에서 80년 만의 최대 홍수 피해가 발생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AP통신은 수백만 이재민을 대상으로 미국과 탈레반이 민심을 얻기 위한 경쟁에 돌입했다고 보도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도 미국이 이재민 구호 작전을 어떻게 펴는가에 따라 미국에 대한 호감을 높이고 탈레반의 영향력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아니면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고 3일 보도했다.》

파키스탄 카이베르파크툰크와 주에서는 지난달 29일부터 수백 mm의 폭우가 쏟아져 6만여 채의 가옥이 파괴되고 1400여 명의 사망자와 25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특히 피해가 심각한 지역은 파키스탄 정부군이 지난해부터 탈레반 무장 세력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스와트 계곡이다. 이 지역에서만 1만4000채의 가옥이 파괴됐고 여러 마을이 사라졌다.

지역 주민인 파잘 마울라 씨는 “3년간의 탈레반 통치도, 그리고 1년 넘게 지속된 정부군과의 치열한 전투도 지난 3일간의 홍수에 비길 바 못 된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재난을 당한 주민들은 마실 물과 식량을 구하지 못해 정부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기대에 못 미칠 경우 분노한 이재민들이 대거 탈레반 세력으로 돌변할 수 있다. 이를 기회로 탈레반이 민심을 얻기 위해 병원을 세워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이재민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3일 보도했다.

파키스탄 정부 측도 해당 지역에서 작전 중이던 병력 3만 명을 구호활동에 투입했지만 다리와 도로들이 모두 파괴돼 도움이 못 미치는 곳들이 많다. 미국의 전문가들도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전문가들은 2004년 인도네시아 지진해일과 2005년 파키스탄 대지진 때 미국이 신속한 구호활동을 벌여 이슬람 민심이 매우 호의적으로 변했던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재난이 왔을 때 적극 지원하면 수십억 달러의 원조를 주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주장도 많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파키스탄에서 미국에 호감을 갖고 있는 주민은 17%에 불과했다.

이를 의식해 미군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중이던 헬기 부대를 파견해 구호활동을 벌이고 이슬람 율법에 맞게 만든 구호식품을 전달하고 있다. 미국 정부도 1000만 달러의 긴급 지원을 발표했다. 하지만 유럽이 40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한 데 비하면 아직 성의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다.

이런 가운데 피해 지역에서 이틀 동안 잠시 멈췄던 비가 3일부터 다시 시작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와르사크 댐에 붕괴 경고가 내려져 인근에 있는 카이베르파크툰크와 주의 주도 페샤와르 시에서는 주민들의 대규모 탈출 러시가 시작됐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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