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가 장기화함에 따라 선진국들이 시중에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리는 내용의 추가 부양책을 서둘러 마련하고 있다. 미국은 새로운 국채 매입 방안을 통해 경기 회복을 꾀하고 있고, 유럽은 기존 부양책을 더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장기 침체에 시달리는 일본은 4년 3개월 만에 제로금리로 복귀했다.
선진경제권의 이 같은 움직임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잇따른 경기부양책에도 좀처럼 경제 회복이 가시화하지 않는 데 따른 것이다. 또 일반적으로 유동성 공급이 자국 통화가치의 약세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최근 벌어지는 국제 통화전쟁의 또 하나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일본은행은 5일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0.1%에서 0∼0.1%로 인하했다고 밝혔다. 또 35조 엔어치의 장기국채와 회사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확대하기로 했다.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일본은행 총재는 “최근 일본 경기의 개선 움직임이 약해지면서 디플레 탈출을 위해선 이례적인 금융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일본은 국채와 상장투자신탁(ETF), 부동산투자신탁(REIT) 등을 매입하기 위한 자산매입기금을 설립하기로 했다. 금리를 떨어뜨리고 직접 유동성을 확대하는 패키지 정책으로 금융완화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은행의 이번 조치는 엔화 가치의 하락을 유도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시중에 자금공급을 늘리면 엔화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줄어 엔화 강세가 완화될 것이란 뜻이다.
미국도 조만간 국채 매입 등을 핵심으로 하는 새 유동성 공급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4일 로드아일랜드 주의 한 포럼에서 “지금까지 취한 미국의 자산 매입 조치는 효과가 있었다”며 “추가로 자산 매입을 한다면 금융시장 상황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1조7000억 달러 규모의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해 올해 3월 마무리했지만 실업률이 10%에 육박하는 등 여전히 경기 침체의 골이 깊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FRB가 이르면 11월 경기 회복을 위한 새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로 인한 국채 매입 규모가 1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유럽도 은행과 기업에 대한 각국 정부의 유동성 지원 기한을 당초 올해 말에서 내년 말까지 1년간 더 연장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호아킨 알무니아 유럽연합(EU) 경쟁정책담당 집행위원은 4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우리는 아직 평시 체제로 전환할 때가 아니며 여전히 공적 자본이 필요한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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