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끝까지 하나였다… 칠레 광원 33명 구조 마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5일 03시 00분


끝까지 그들은 하나였다. 칠레 산호세 광산에 매몰됐던 광원 33명에 대한 구조작업이 13일(현지 시간)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막을 내렸다.

구조대는 이날 오후 9시 55분 매몰된 지하갱도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수아 씨(54)를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8월 5일 매몰된 광원 33명이 69일 만에 모두 구조되는 순간이었다.

우르수아 씨가 ‘불사조’ 캡슐에서 내려 땅에 발을 내디디는 순간 구조대와 가족, 취재진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전사와 같은 카리스마로 광원들을 이끌었던 리더 우르수아 씨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에게 “광원들에 대한 지휘권을 이제 대통령께 넘겨드린다”며 “우리는 가족을 위해 싸웠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는 동료들을 다잡아주고 부족한 음식의 배급량을 정하는 등 단호하면서도 따뜻한 지도력을 발휘해 칠레 국민의 존경을 샀다. 구조 마지막 순번도 자원했다.

▼ “최후의 영웅, 임무완수를 축하한다” ▼

피녜라 대통령은 그에게 “위대한 선장들이 그렇듯 당신은 침몰 직전 마지막 순간까지 배를 지켰다”며 “영웅이여, 임무 완수를 축하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모자를 벗어 가슴에 얹고 다 함께 노래를 부르자”며 칠레 국가를 선창하자 구조대와 광원들, 가족, 취재진까지 광산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따라 불렀다.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순조로운 진행으로 당초 48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구조는 22시간 40분 만에 완료됐다. 광산 곳곳에서는 자동차와 작업차량들의 축하 경적소리가 울렸고 사이렌 불빛이 빛났다. 구조대는 우르수아 씨가 올라오는 동안 ‘나가자, 칠레인이여. 오늘 우리가 광원을 모두 구할 것이다’라는 내용으로 개사한 응원가를 합창했다.

구조대원들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광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조캡슐에서 내려 땅을 디딜 때마다 ‘치, 치, 치, 레, 레, 레’를 외치며 환영했고 대통령 내외도 끝까지 현장을 지키며 모든 광원과 포옹했다.

구조현장에서 500여 m 떨어진 ‘희망 캠프’의 가족과 친구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미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진 광원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남동생인 다리오 세고비아 씨(48)를 병원에 보낸 마리아 세고비아 씨(52)는 “지금 너무 행복하지만 아직도 갱도에 남아 있는 광원이 있다”며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다. 처음 여기에 올 때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마지막 광원이 살아나올 때까지 이곳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구조된 광원들도 동료가 모두 구조될 때까지 현장에 남아있겠다고 버티다 ‘빨리 건강 상태를 점검받아야 한다’는 의료진의 강권에 못 이겨 병원으로 이송됐다.

예정을 훨씬 앞당긴 순조로운 구조작업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초 48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시간이 갈수록 구조작업은 탄력을 받았다. 약 1시간에 한 명꼴로 진행되던 구조작업은 나중에는 45분으로 줄었고 막판에는 25분에 한 명꼴로 구조됐다. 총 22시간을 조금 넘겨 모든 광원이 구조됐고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지하갱도로 내려갔던 6명의 구조대원도 밤 12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모두 지상으로 올라왔다.

예정을 크게 앞당긴 구조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사전에 철저하게 세워진 계획이 차질 없이 이행된 덕분이다. 구조대는 광원들이 캡슐을 타고 올라오는 동안 맥박과 혈압 등을 체크했고 캡슐 안에서 구토증세를 느끼지 않도록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제공한 묽은 특별식을 먹도록 했다. 또 광원들은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비해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캡슐에 탑승하기 전 혈전 방지를 위한 특수 양말과 산소마스크, 스웨터, 시력 보호를 위한 선글라스 등을 착용했다. 치밀하게 제작된 ‘불사조’ 캡슐은 시간이 갈수록 성능을 제대로 발휘해 갱도를 오르내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구조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지하갱도에 남아 있는 광원들은 여유도 생겼다. 8명이 지하에 남아 있었을 때에는 서로 휘파람을 불거나 큰 소리로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광원들은 예상보다 건강했다. 구조대가 미리 내려 보낸 면도기 덕분에 외모도 말쑥했다.

광원들이 이송된 코피아포 병원 의료진은 “규폐증이 있는 마리오 세풀베다 씨(39·두 번째 구조자)와 최고령자 마리오 고메스 씨(63·아홉 번째 구조자)를 빼면 건강상태가 모두 완벽하다”고 전했다.

광원들은 전원 앞으로 48시간 동안 병원에 머물며 정식 진료를 받는다. 가족들과의 정식 상봉과 공식 언론 인터뷰는 이틀간의 검진과 진료 과정이 끝나야 가능하다.

이날 구조가 완료된 후 피녜라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칠레 국민은 한결같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역경에 맞서 싸워 이겼다”며 “칠레는 과거보다 더 단결되고 강력한 나라로 거듭났다”고 선언했다. 그는 산호세 광산을 국가기념물로 지정해 미래 세대를 위한 희망의 상징으로 남기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산호세 광산(칠레)=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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