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MB 평화훼방꾼 발언’ 진위 싸고 정면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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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1일 03시 00분


靑 “박지원 이적행위”… 朴 “靑의 선전포고”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선출돼 차기 중국 최고지도자로 사실상 내정된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이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 노릇을 한다”고 말했다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에 청와대가 강하게 반박하고 나서는 등 정치권과 외교가에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본보 20일자 A6면 참조 [시진핑, 차기 지도자로]“시진핑, ‘MB는 평화훼방꾼’이라고 해”

홍상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20일 브리핑에서 “박 원내대표의 발언은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국내 정치 목적으로 외교를 악용하고 국익을 훼손하는 이적행위와 다를 바 없다. 무책임한 행동을 정중히 사과하고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1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시 부주석이 지난해 5월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왜 현 한국 정부는 과거 정부와 달리 남북 교류협력을 안 해 긴장관계를 유지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이명박 정부는 (일본과) 교과서 문제도 있는데 왜 일본과 함께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 노릇을 하느냐’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 “시진핑, MB 평화훼방꾼 발언” 박지원 주장 진위논란 확산 ▼
대다수 당시 배석자들 “훼방꾼 발언 없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이 ‘이명박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훼방꾼’이라고 말했다”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발언의 진위 논란을 보도한 동아일보 20일자 A6면 기사.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이 ‘이명박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훼방꾼’이라고 말했다”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발언의 진위 논란을 보도한 동아일보 20일자 A6면 기사.
이 대통령은 박 원내대표의 ‘평화 훼방꾼’ 얘기를 듣고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릴 것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청와대는 당시 주중 한국대사관이 작성한 ‘면담 요록’과 김 전 대통령 측이 작성한 ‘면담록’을 모두 리뷰하고 주중 대사관 관계자 등 배석자들을 상대로 유사한 발언이 있었는지를 파악한 뒤 적극 공세에 나섰다.

○ 청와대 “이적행위 다를 바 없어”

홍 수석은 “박 원내대표의 발언은 어찌 보면 책임 있는 정치인이 할 수준의 발언은 아니다”라며 “이에 대해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선 것은 박 원내대표의 발언이 이 대통령뿐 아니라 시 부주석에 대한 심각한 인격적 모독이 될 수 있고 나아가 대한민국을 모독하고 결과적으로 국익을 크게 훼손하는 행위로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역사적인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회의의 성공을 위해 여야를 떠나 초당적 협조를 해도 부족한 이 시점에서 이런 허무맹랑한 얘기로 대통령을 흠집 내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이런 ‘아니면 말고 식’ 전형적인 흠집 내기 수법이 국민에게 이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평화와 외교의 훼방꾼은 바로 자신이 아닌지 자문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배은희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박 원내대표의 마구잡이 거짓말이 이제 외교적 결례에까지 이르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가세했다.

○ 박지원 “사실을 말했다”

이에 맞서 박 원내대표는 20일 오후 전현희 원내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박 원내대표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직접 들은 사실을 밝힌 것을 두고 ‘이적행위’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 모두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선전포고”라고 반박했다. 전 대변인은 “김 전 대통령 측 면담록에는 없지만 배석했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최경환 동교동 사저 비서관에게 사실임을 다 확인했다”며 “정부가 갖고 있다는 면담 요록도 완전한 녹취록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 “시진핑 원색 발언 한 적 없어”

김 전 대통령과 시 부주석은 지난해 5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50분가량 면담을 갖고 한반도 주변정세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당시 면담에는 한국 측에서 박 원내대표와 정 전 통일부 장관, 신정승 당시 주중 대사, 공사참사관, 참사관이 배석했다. 당시 50분가량의 공식 면담 외엔 귀엣말 형식의 비공식 대화는 없었다는 게 참석자들의 설명이다.

동아일보는 19, 20일 당시 배석자들 대부분과 통화를 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배석자들은 ‘훼방꾼’이란 표현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면담에 배석한 한 정부 관계자는 “시 부주석이 원색적인 발언을 한 적은 없다. 다만 시 부주석이 덕담 차원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지금의 좋은 한중 관계는 대통령님 재임 중의 노력과 뗄 수 없는 일’이라고 하긴 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박 원내대표의 발언은 자칫 국제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시 부주석은 그런 말을 할 사람도 아니고,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중국어 대화에 신경 쓰느라 한국어 통역은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전제한 뒤 “‘평화 훼방꾼’ 같은 발언은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 부주석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는 김 전 대통령에게 ‘한국 정부가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에 좀 더 신경을 써야 북핵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비서관은 “평화 훼방꾼이라는 말은 없었지만 시 부주석이 ‘6자회담국이 노력하는데 왜 한국정부는 방해하는 듯한 거냐. 남북이 동포 아니냐’라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계속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시 부주석의 입에서 ‘조장’ ‘방해’ 등의 용어가 나왔다고 말했다. 최 비서관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는 “‘훼방꾼’으로 해석되는 발언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확인 결과 당시 주중 대사관이 작성한 면담 요록에는 ‘평화 훼방꾼’ 등의 발언이 나오지 않는다. 김 전 대통령과 시 부주석의 대화 내용을 녹취한 수준의 면담 요록에 따르면 시 부주석은 남북관계와 관련해 “중국은 한반도와 가까운 이웃 국가로서 남북 모두의 친분과 진심어린 협력 화해를 원하고 중국은 이를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는 또 북핵 6자회담과 관련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명백하다. 적극적으로 끊임없는 노력을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됐다.

당시 최 비서관이 작성한 면담록에도 ‘평화 훼방꾼’ 발언은 없다. 시 부주석은 다만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명백하다. 이를 위해 적극적이고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각국이 더 노력해야 한다”면서 “아울러 미국도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한반도의 새로운 상황에 대응해 미국과 의사소통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다”라고 미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돼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는 시 부주석이 “대통령님 재임 시절에 21세기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 지금의 좋은 한중 관계는 대통령님 재임 중의 노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다”면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명백하며 이를 위해 적극적이고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이런 공방에 대해 주한 중국대사관 위빙 공보관은 “혹시라도 나중에 밝힐 것이 있으면 밝히겠다”고만 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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