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선출돼 차기 중국 최고지도자로 사실상 내정된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이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 노릇을 한다”고 말했다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에 청와대가 강하게 반박하고 나서는 등 정치권과 외교가에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홍상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20일 브리핑에서 “박 원내대표의 발언은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국내 정치 목적으로 외교를 악용하고 국익을 훼손하는 이적행위와 다를 바 없다. 무책임한 행동을 정중히 사과하고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1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시 부주석이 지난해 5월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왜 현 한국 정부는 과거 정부와 달리 남북 교류협력을 안 해 긴장관계를 유지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이명박 정부는 (일본과) 교과서 문제도 있는데 왜 일본과 함께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 노릇을 하느냐’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 “시진핑, MB 평화훼방꾼 발언” 박지원 주장 진위논란 확산 ▼ 대다수 당시 배석자들 “훼방꾼 발언 없었다”
이 대통령은 박 원내대표의 ‘평화 훼방꾼’ 얘기를 듣고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릴 것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청와대는 당시
주중 한국대사관이 작성한 ‘면담 요록’과 김 전 대통령 측이 작성한 ‘면담록’을 모두 리뷰하고 주중 대사관 관계자 등 배석자들을
상대로 유사한 발언이 있었는지를 파악한 뒤 적극 공세에 나섰다.
○ 청와대 “이적행위 다를 바 없어”
홍 수석은 “박 원내대표의 발언은 어찌 보면 책임 있는 정치인이 할 수준의 발언은 아니다”라며 “이에 대해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선 것은 박 원내대표의 발언이 이 대통령뿐 아니라 시 부주석에 대한 심각한 인격적 모독이 될 수 있고
나아가 대한민국을 모독하고 결과적으로 국익을 크게 훼손하는 행위로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역사적인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회의의 성공을 위해 여야를 떠나 초당적 협조를 해도 부족한 이 시점에서 이런
허무맹랑한 얘기로 대통령을 흠집 내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이런 ‘아니면 말고 식’ 전형적인 흠집 내기 수법이 국민에게
이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평화와 외교의 훼방꾼은 바로 자신이 아닌지 자문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배은희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박 원내대표의 마구잡이 거짓말이 이제 외교적 결례에까지 이르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가세했다.
○ 박지원 “사실을 말했다”
이에 맞서 박 원내대표는 20일 오후 전현희 원내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박 원내대표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직접 들은 사실을
밝힌 것을 두고 ‘이적행위’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 모두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선전포고”라고 반박했다. 전
대변인은 “김 전 대통령 측 면담록에는 없지만 배석했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최경환 동교동 사저 비서관에게 사실임을 다
확인했다”며 “정부가 갖고 있다는 면담 요록도 완전한 녹취록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 “시진핑 원색 발언 한 적 없어”
김 전 대통령과 시 부주석은 지난해 5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50분가량 면담을 갖고 한반도 주변정세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당시 면담에는 한국 측에서 박 원내대표와 정 전 통일부 장관, 신정승 당시 주중 대사, 공사참사관, 참사관이 배석했다.
당시 50분가량의 공식 면담 외엔 귀엣말 형식의 비공식 대화는 없었다는 게 참석자들의 설명이다.
동아일보는 19, 20일 당시 배석자들 대부분과 통화를 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배석자들은 ‘훼방꾼’이란 표현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면담에 배석한 한 정부 관계자는 “시 부주석이 원색적인 발언을 한 적은 없다. 다만 시 부주석이 덕담 차원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지금의 좋은 한중 관계는 대통령님 재임 중의 노력과 뗄 수 없는 일’이라고 하긴 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박
원내대표의 발언은 자칫 국제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시 부주석은 그런 말을 할 사람도 아니고,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중국어 대화에 신경 쓰느라 한국어 통역은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전제한 뒤 “‘평화 훼방꾼’
같은 발언은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 부주석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는 김 전 대통령에게 ‘한국 정부가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에 좀 더 신경을 써야 북핵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비서관은 “평화 훼방꾼이라는 말은 없었지만 시 부주석이 ‘6자회담국이
노력하는데 왜 한국정부는 방해하는 듯한 거냐. 남북이 동포 아니냐’라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계속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시 부주석의 입에서 ‘조장’ ‘방해’ 등의 용어가 나왔다고 말했다. 최 비서관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는 “‘훼방꾼’으로
해석되는 발언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확인 결과 당시 주중 대사관이 작성한 면담 요록에는
‘평화 훼방꾼’ 등의 발언이 나오지 않는다. 김 전 대통령과 시 부주석의 대화 내용을 녹취한 수준의 면담 요록에 따르면 시
부주석은 남북관계와 관련해 “중국은 한반도와 가까운 이웃 국가로서 남북 모두의 친분과 진심어린 협력 화해를 원하고 중국은 이를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는 또 북핵 6자회담과 관련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명백하다. 적극적으로 끊임없는 노력을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됐다.
당시 최 비서관이 작성한 면담록에도 ‘평화
훼방꾼’ 발언은 없다. 시 부주석은 다만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명백하다. 이를 위해 적극적이고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각국이 더 노력해야 한다”면서 “아울러 미국도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한반도의 새로운 상황에 대응해 미국과
의사소통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다”라고 미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돼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는 시
부주석이 “대통령님 재임 시절에 21세기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 지금의 좋은 한중 관계는 대통령님 재임 중의 노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다”면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명백하며 이를 위해 적극적이고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이런 공방에 대해 주한 중국대사관 위빙 공보관은 “혹시라도 나중에 밝힐 것이 있으면 밝히겠다”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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