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에 근거를 둔 알카에다가 미국 본토와 미국민 및 미 우방국을 공격하려는 계획은 끊이지 않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오후 백악관에서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번 화물테러 시도가 알카에다의 근거지인 예멘에서 시작된 것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미 정보당국은 이번 화물폭탄의 복잡하고 정교한 장치를 감안할 때 알카에다의 소행일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 긴박했던 하루
28일(영국 시간) 늦은 밤. 영국 해외정보국(MI6)의 예멘지부장은 현지 정보원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은 알카에다가 미국행 화물기에 폭탄을 실어 밀반입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2개의 폭탄소포가 예멘 수도 사나에서 떠난 두 대의 비행기에 나눠 실렸고 한 대는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를 거쳐, 다른 한 대는 영국 이스트미들랜즈 공항을 거쳐 미국 시카고로 간다는 것이었다. 지부장은 곧바로 런던 본부에 소식을 알렸고 본부는 미국 국토안보부와 두바이 정보당국에도 급히 소식을 타전했다.
29일 오전 3시 30분 이스트미들랜즈 공항을 수색하던 경찰로부터 미국 UPS 화물기의 화물에서 검은색 프린터 토너 대신 흰색 가루가 들어 있는 잉크 카트리지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 소식은 미국 백악관과 오바마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됐으나 오전 10시경 폭약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음성 조사 결과가 나와 미영 양국은 문제의 비행기를 이륙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두바이 국제공항의 미국행 페덱스 화물기 수색에서 또다시 의심스러운 화물을 발견했다. 미 시카고의 유대교 예배당이 행선지인 박스에서 휴대전화 송수신이 가능한 장치가 붙어 있고 폭발물질을 함유한 프린터 카트리지가 발견된 것. 이스트미들랜즈 공항의 화물에 대한 정밀조사도 다시 시작됐다. 오후 2시경 HP의 프린터에서 휴대전화 송수신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치가 흰색 가루와 함께 발견됐다. 폭발물 실험 결과 양성반응이 나왔다. 미국은 즉각 영국에 소식을 전했고 백악관은 예멘발 화물기를 대대적으로 수색했다. 두바이 경찰은 “기기 안에 들어 있는 물질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디트로이트행 여객기 폭파미수 사건에 이용된 고성능 폭발물질인 펜타에리트리놀 테트라니트레이트(PETN)였다”고 밝혔다.
○ 예멘발 화물 반입금지
미 국토안보부는 “승객들은 폭발물 탐지견을 동원한 검색이나 폭발물질 잔류물 검사 등 수하물 검사와 함께 공항 경비도 한층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며 화물기 검색을 한층 강화하고 모든 공항에 보안검색을 철저히 하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발표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주요 국가도 예멘발 화물기가 자국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등 항공 및 해양운송 보안 체제를 대폭 강화하고 나섰다. 영국의 테레사 메이 내무장관은 “영국 정부는 소유자가 동반되지 않거나 불분명한 모든 예멘발 화물의 운송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 새 국면 맞는 테러와의 전쟁
재닛 나폴리타노 미 국토안보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CBS에 출연해 “이번 음모는 알카에다의 공격 특징을 갖고 있다”며 폭발물이 PETN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적들이 항공에 의한 테러를 노린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 정보당국자들은 이번 사건을 예멘에 근거지를 둔 아라비아반도의 알카에다(AQAP) 소행으로 보고 있다. AQAP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나이지리아인 용의자 우마르 파루크 압둘 무탈라브가 저지른 디트로이트행 여객기 폭파미수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미 정보당국은 알카에다가 여객기 테러가 아닌 우편화물을 이용한 화물테러를 감행했다는 점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화물의 경우 보안검색 규정이 나라마다 다르고 검색 기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국가에서 발송되는 화물은 검색 절차 없이 항공기에 실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알카에다가 이런 허점을 노린 것은 테러수법이 그만큼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 PETN ::
니트로글리세린 계열로 티엔티(TNT)보다 충격에 민감하며 소량으로도 강력한 폭발력을 보인다. 지난해 성탄절 때 미국 노스웨스트항공 253편을 폭파하기 위해 시도된 폭약과 같은 성분이다. 당시엔 예멘에 본부를 둔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에서 훈련받은 자가 80g을 지니고 탄 뒤 폭발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 80g은 공중에서 비행기를 폭파할 수 있는 양이라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이번에 발견된 폭탄 2개에는 그때보다 각각 몇 배는 더 되는 양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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