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을 탈환하는 압승을 거둔 사흘 후인 5일(현지 시간) 워싱턴 헤리티지 재단 8층 집무실에서 에드윈 풀너 이사장(70·사진)을 만났다. ‘보수주의 사상의 지식공작소’로 불리는 이 재단을 1977년부터 33년 동안 이끌고 있는 풀너 이사장은 이번 중간선거에 대해 “보수주의가 승리한 것”이라며 한껏 고무된 모습이었다. 전날인 4일에는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가 중간선거 이후 첫 외부 공개행사로 헤리티지 재단 방문을 택해 “재단이 주도해 온 보수주의 운동이 선거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했다. 》 흔들의자에 앉아 시종 편안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한 풀너 이사장은 “이번 선거에 공화당이 승리했다고 해서 미국 국민이 공화당에 백지 위임을 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연방정부는 가장 중심적이고 고유한 역할인 미국을 보호하고 미국인의 안전을 지켜내며 자유시장경제의 원활한 기능을 지켜내는 역할에 머물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일 헤리티지 재단은 2011년 새롭게 임기를 시작하는 신임 하원의원을 중심으로 80여 명의 현역 의원을 초청해 대규모 세미나를 계획 중이다.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나타난 민심은 무엇인가.
“보통의 미국인들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그리고 해리 리드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지금 미국이 나아가는 방향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는 뜻을 분명히 전달했다는 것이다. 미국인의 일상생활에 연방정부가 지나치게 깊숙이 간섭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연방정부에 대해 본연의 책무인 미국을 위협에서 지켜내고 미국인의 안전을 보호하고 자유시장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역할에 머물라는 뜻을 전한 것이다. 미국인들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부여 받으면 되는 것이지 모두가 동등한 결과를 낼 수는 없다는 것은 평범하지만 중요한 원칙이다.”
―공화당에도 던져진 메시지가 있을 것 같은데….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원에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원과 백악관의 주인은 민주당이다. 공화당이 국정운영의 책임을 지게 된 것도 아니다. 평범한 시민들이 느끼기에 공화당이 제시한 생각이 더 사리에 맞고 그 정책이 더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지지한 것이다. 현재 하원을 이끌게 된 공화당이 추진한 정책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2년 후 다시 새로운 심판을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유권자들의 뜻은 신성하고 중요한 것이다.”
―이번 선거를 관통한 테마 중 하나는 기성 정치권력에 대한 불신과 분노인데….
“미국 시민들은 워싱턴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정치권력이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화가 나고 좌절한 것이다. 워싱턴은 스스로의 이익에 맞춰 행동했고 극히 소수의 대변자처럼 운영돼 왔다. 국민 대다수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정부가 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주요 여론기관 조사를 보면 미국의 주류 이념은 단연 보수주의다. 하지만 그 다수를 차지하는 보수주의자들과 그들이 가진 보수주의적인 생각이 지난 2년 동안 철저하게 무시당해 왔다는 것에 화가 난 것이다.”
―티파티(TEA party)의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이번 선거의 승리는 풀뿌리 운동의 승리라고도 규정하고 싶다. 적극적인 정치과정에 대한 참여는 새로운 시민운동을 매우 생명력 있고 강인한 것으로 만들었다. 티파티는 당장 정당조직으로 발전하지는 않겠지만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도 영향을 발휘할 지속가능한 움직임이다. △제한된 정부 △강력한 국가안보정책 △개인의 자유와 전통적인 가치의 존중 등에 이르기까지 보수주의 운동과 근본적인 가치와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
―새로운 하원의장으로 유력한 존 베이너 공화당 원내대표는 어떤 사람인가.
“개인적으로 잘 안다. 잘 듣는 사람이다. 소상공인으로 미국 중부의 가장 평범한 대가족 출신의 사람이기도 하다. 박사학위도 없고 지적인 오만도 없으며 젠체하지도 않는다.”
―베이너 대표가 승리선언 연설에서 울먹였는데….
“넉넉하지 않은 가정의 12남매 틈바구니에서 자라 미국 권력순위 3위라는 하원의장에 등극하는 자리에서 목이 메는 경험을 한 것은 인간적인 면모다. 아메리칸 드림이 여전히 유효하고 미국은 아직도 기회의 땅이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2년 전 오바마 대통령도 그런 가능성을 입증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타결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한미 FTA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합의한 것이고 공화당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지난 두 차례의 회담에서 약속한 것처럼 의회비준을 위한 진정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일이고 비준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미국은 한국 시장은 물론이고 아시아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크게 축소될 것이다. 유럽연합(EU)과 중국 등이 한국 시장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른바 레임덕 회기인데 비준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쉽지는 않다고 본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로 생긴 상처를 좀 치유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할 것이다. 당장 펠로시 의장이 소수당의 하원원내대표로 지도부에 남겠다고 선언하면서 민주당 내 내분의 골도 깊어질 것이다.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고 당을 정비하는 작업에 우선순위가 있을 것이다.”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G20의 성공은 물론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신들의 미래에 좀 더 확신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국을 100번도 더 다녀 보고 역대 대통령 6명과 모두 다 친하게 지냈다. 한국인의 잠재력은 무한한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다른 나라 국민 중 제일 지혜롭고 뛰어난 사람들이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 에드윈 풀너
△1941년 일리노이 주 시카고 출생 △1963년 레지스대 영문과 학사 △에든버러대 정치학 박사 △1977년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2005년 깅리치-미첼 미국의회 유엔개혁 TF팀 △주요 저서: 자유의 행진(1998), 지식의 순례자(1999), 미 국을 위한 리더십(2000), 미국을 바로잡다(2006) 등 다수 △주요 상훈: 대통령 시민메달(1989·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 령), 워싱턴에서 가장 힘 있는 인사 50인(2007·GQ 매거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보수인사 100인(2007·영국 텔레그래프), 한미수교훈장 광화장(2002·김대중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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