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여 울지말라” 눈물 삼킨 10만명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23일 03시 00분


화재 참사 추모식 인파… 정부 부패 ‘말없는 질타’

21일 중국 상하이(上海)의 한 번화가에는 수많은 시민으로 하루 종일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가슴마다 “상하이여, 울지 말라…”라는 글이 쓰인 검은색 리본을 단 이들은 침묵과 애도로 숨진 이들을 추모했다.

“단지 숨진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온 것만은 아니에요. 이번 화재는 정말 모든 사람의 가슴을 건드렸어요.”

추모식에 참석한 젊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2일 전했다. 이날 행사는 일주일 전인 15일 자오저우루(膠州路)의 고층아파트 화재참사 현장에서 열린 ‘터우치(頭七) 의식’. 사망자가 세상을 떠난 후 7일째 헌화하면서 슬픔을 표시하는 중국인의 의식이다. 추모식에 이처럼 많은 시민이 참여한 것은 드문 일이다. 당시 화재로 58명이 숨지고 126명이 현재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화재현장 주변 담장은 이른 새벽부터 사망자의 친지와 자발적으로 참가한 시민들이 들고 온 꽃이 쌓여 ‘꽃 담장’으로 변했다. 이 중 일부는 베이징(北京)과 광저우(廣州) 등 먼 외지에서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 목격자는 “오전 6시부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홍콩 언론은 “대중이 집단적으로 슬픔을 표현했다”고 전했다. 추모식장 입구에서 어떤 사람은 무료로 흰 국화를 나눠줬다. 한 기자는 분당 평균 약 120명이 화재 현장에 노란 꽃이나 하얀 꽃, 혹은 개인 물품을 놓고 희생자를 추모했다고 전했다. 적어도 5만 명 이상, 많게는 10만 명이 참가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날 활동이 시위로 격화될까 노심초사했다. 상당한 경찰력을 동원해 주변을 경비했으나 행사는 큰 소요 없이 끝났다. SCMP는 시민들이 침묵으로 정부의 부패와 무능을 질타했다고 해석했다. 이번 화재 발생은 공무원의 부패와 정부의 관리 소홀이 한 원인이었다는 의심과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 화재 진압 및 수습 과정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위정성(兪正聲) 상하이 시 서기와 한정(韓正) 상하이 시장 등 핵심 인사가 모두 참석했다. 일부 시민은 위 서기의 문책을 요구했다고 밍(明)보는 전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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