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이상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해 온 양키제국의 급격한 몰락을 보여주는 조곡(弔哭)으로 들린다.”
위키리크스의 무차별 정보폭로전이라는 게릴라전에 속절없이 당하는 미국의 모습을 보면서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이 직설적으로 던진 한마디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벌여 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전쟁의 ‘불편한 진실’을 가감 없이 공개하더니 이번에는 전 세계에 파견된 외교공관에서 미국으로 보낸 전문 25만 건 이상을 폭로해 미국 외교를 마비 직전의 상황에 빠뜨리고 있는 것을 지적한 것.
‘제국의 몰락’을 언급할 수 있는 근거는 암호화 방식으로 가장 비밀스럽게 오가는 외교전문이 한두 건도 아니고 수십만 건이 너무 쉽게 유출됐다는 점 때문이다. 슈퍼파워를 지탱하는 신경계가 통째로 무너진 셈이다. 시기적으로도 최근 3년의 내용이어서 미국의 정보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보여준다.
미국 외교안보정책 최우선 순위인 중동과 아프간 정책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노출된 점도 미국에는 대단히 뼈아픈 대목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당시 공약으로 이라크전쟁의 종료 선언과 아프간에서의 명예로운 철군을 약속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이기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위키리크스가 밝힌 전쟁의 진실은 사뭇 다른 것이었다.
위키리크스의 비밀 폭로로 임무 수행이 불가능해졌거나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외교관과 정보기관 요원의 교체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당장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을 비판한 사실이 공개된 칼 아이켄베리 대사는 교체 1순위로 꼽힌다.
9·11테러 이후 대대적으로 손질한 정보통합 관리체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미 정보당국은 정보 유출의 진원지로 국방부 내부전산망을 꼽고 있다. 테러공격에 대처하겠다며 부처 간 정보공유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시프르넷’ 망이 정보유출의 틈이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우선 부처 간 정보 공유 차단 등 대대적인 수술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는 자칫 테러정보에 대한 대비태세를 약화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오바마 행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다.
미국의 국가 신뢰도 역시 단기간에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 평가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외교관들과 아무도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도 “미국의 국익에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손상이 가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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