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바뀌었다. 취임 후 2년간 공화당을 겨냥해 투쟁하는 전사(戰士)의 모습을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금융위기를 초래한 공화당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을 대놓고 비난했지만 오바마 대통령 입에서 이제 공화당을 욕하는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
그 대신 그는 ‘적’과 손잡았다. 그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08년 대통령선거 때 연소득 25만 달러 이상인 고소득층에 대한 감세는 ‘불의와 타협하는 것’이라며 공화당을 기득권층 옹호세력이라며 몰아세웠다. 11월 중간선거에서도 부자 감세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며 ‘공화당=기득권층 대(對) 민주당=서민층’이라는 대립구도를 선거에 적극 활용했다.
부자 감세 문제에 대해선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던 오바마 대통령이 민주당 지도부와 한마디 상의도 않고 공화당 지도부와 타협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대변신’을 의미한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에선 오바마 대통령에게 반기(反旗)를 들었지만 공화당은 180도 달라진 오바마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낸다. 공화당이 반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추가협상을 진두지휘한 것도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취임 후 기업인과 거리를 두던 태도도 크게 달라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15일 구글과 시스코 페이스북 IBM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다우케미컬 펩시코 등 기업인 20여 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이들과 원탁회의를 하면서 기업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세금 문제나 기업규제 문제에 대한 기업인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이다. 월가를 개혁하고 기업을 손보는 데 주력했던 과거 태도와는 딴판이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대놓고 지지했던 미 상공회의소에선 오바마 대통령의 친기업적 태도에 환영메시지를 냈다.
‘좌 편향’ 정책에 집중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이 같은 ‘우 클릭’ 변신은 중간선거 참패가 계기가 됐다. 내년부터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는 상황에서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과 협조하지 않고는 어떤 일도 해낼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오바마 대통령의 변신을 재촉했을 것으로 미 언론은 분석했다.
오바마의 실용주의 정책에 대해 미 국민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뉴욕타임스와 CBS뉴스가 공동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간선거 전인 10월 오바마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찬성 비율은 35%였지만 공화당과 감세정책을 타협한 후 실시한 최근 조사에선 49%로 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의 변신은 차기 대선구도와도 연관돼 있다는 게 정가의 분석이다. 임기 후반 들어 경제가 어려워진 경우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공화당에 부자 감세를 내주고 실업자 보험혜택 연장 카드를 받은 것도 두 가지 정책 모두 경기 불씨를 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민주당을 경악하게 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부자 감세 정책은 이제 서곡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개혁을 고집하는 민주당보다는 실용적인 정책을 강조하는 공화당 정책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과 부자 감세 정책을 타협한 것과 관련해 데이비드 액설로드 백악관 선임고문은 “국민 이익이 최대화되도록 정책을 선택한 것일 뿐 어떤 정치적인 계산도 포함돼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문제는 중립성향의 유권자 표를 의식하다가 핵심 지지층의 이탈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경제 살리기가 최대의 과제인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이 같은 모험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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