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이집트]카이로 광장 수십만 집결 ‘인간 사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일 03시 00분


엘바라데이 TV나와 “무바라크 4일까지 사임하라” 통첩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이집트인들이 지난달 31일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아들 가말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주택 앞에서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이집트인들이 지난달 31일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아들 가말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주택 앞에서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100만 명 총궐기대회가 예고된 1일 이집트 시위 사태의 메카로 자리 잡은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는 이번 시위 시작 이래 최대 규모의 시위대가 모여들었다. 광장은 이른 아침부터 정해진 통금시각을 무시하고 잔디에 텐트를 치며 밤을 지새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알자지라는 “부자와 가난한 자, 기독교신자와 무슬림 등 나이 신분 종교를 초월한 모든 사람이 광장으로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이날 광장 인파를 최대 100만 명으로 추정했다.

카이로 상공에는 하루 종일 군용 헬리콥터가 떠 있었고 거리에는 시위대원들이 인간 사슬로 ‘퇴진’이라고 적힌 단어를 만들거나 ‘겁쟁이여 떠나라, 우리는 절대 이 광장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문구를 도로 위에 적었다. 시위대원들은 “호스니 무바라크가 자리를 내놓을 때까지 광장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이번 주부터 카이로 시내에 나타난 경찰들은 도심 주요 교차로에서 소총을 들고 거리를 지켰다. 군은 광장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신분증을 검사했고 시위대원들 또한 시위 행렬에 합류한 사복경찰을 적발하기 위해 신분증 검사를 했다.

이탈리아에 사는 이집트인 100여 명이 지난달 31일 로마 공화국광장에서 “독재와 폭력은 이제 그만”을 외치며 고국에서 벌어지는 반정부시위에 호응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 로마=EPA 연합뉴스
이탈리아에 사는 이집트인 100여 명이 지난달 31일 로마 공화국광장에서 “독재와 폭력은 이제 그만”을 외치며 고국에서 벌어지는 반정부시위에 호응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 로마=EPA 연합뉴스
대규모의 시위대가 카이로로 향하자 이집트 정부는 카이로로 통하는 모든 고속도로와 대중교통 수단을 막았다. 또 다른 시위 장소인 알렉산드리아로 향하는 시위대의 발을 묶기 위해 철도 서비스도 중단시켰다.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통신수단을 차단하려는 정부의 움직임도 더욱 노골적으로 이뤄졌다. 이미 알자지라 카이로 지국을 폐쇄한 이집트 정부는 무선전화 네트워크를 지난달 28일에 이어 또다시 중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집트 내 인터넷은 이날 100% 차단됐다.

인터넷이 끊기자 구글은 지난달 31일 최근 인수한 소셜인터넷 전화업체 ‘세이나우’를 통해 ‘전화 트위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해 지정된 번호 세 곳에 전화로 음성 메시지를 남기면 메시지 내용이 트위터에 글로 전환돼 올라가게 된다.

이집트 공항은 카이로를 벗어나려는 외국인과 이집트인으로 아수라장이 계속됐다. 각국에서 보낸 항공편이 속속 도착했지만 4500여 명의 승객이 한꺼번에 몰리며 탑승수속이 마비됐다. 승객들은 “공항 직원들이 턱없이 부족하고 항공편 정보는 전무하다”며 “일부 경찰은 비행기에 타려는 외국인들에게 대놓고 2000달러 상당의 돈까지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 좌파 정당연합체 바얀 소속 회원들이 1일 마닐라 주재 미국대사관 앞에서 성조기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초상화를 태우며 이집트 시위대를 지지하는 동조 시위를 하고 있다. 마닐라=로이터 연합뉴스
필리핀 좌파 정당연합체 바얀 소속 회원들이 1일 마닐라 주재 미국대사관 앞에서 성조기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초상화를 태우며 이집트 시위대를 지지하는 동조 시위를 하고 있다. 마닐라=로이터 연합뉴스
시위대 내에서 미국에 대한 시각은 둘로 나뉘고 있다.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시위대원들은 매년 국방비를 지원하며 무바라크 정부를 도운 미국을 비판하고 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버락 오바마가 무바라크를 물러나게 할 열쇠를 쥐고 있다”며 “미국은 민주주의를 믿는다. 이제 그들은 그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미국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은 프랭크 위즈너 전 주이집트 대사를 이집트에 파견해 정치세력들과 물밑 접촉을 시작했다.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알아라비야 위성 채널에 출연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4일까지 사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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